♣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바람세탁소 / 최정진

시인 최주식 2010. 1. 28. 22:24

바람세탁소 / 최정진

 
  수면의 바람이 강변의 벚나무에게 옮겨간다
  나무에 장이 서는지, 잎들이 소란스럽다

 

  새벽의 퉁퉁 부은 눈꺼풀 속에 지난밤의 꿈을 담아왔다 천막을 팽팽하게 끌어당기면 물건을 팔거나 사러 온 사람들은 장에 가기 전에 읍내 하나뿐인 세탁소부터 들렀다 두고 간 옷가지에 묻어있던 주변 마을의 흙들은 저마다 조금씩 빛깔이 달랐다 그새 얼마나 컸냐, 대빗자루로 마당을 쓸듯 기침소리 앞세워 안개를 걷어내는 할아버지 내 고추 그만 만져요 발갛게 익어 떨어질 것 같잖아요

 바람이 벚나무의 가지를 손보고 있다
 다음 장이 서면 바람은 벚꽃을 내놓을까

 
  보따리를 풀어놓고 할머니들은 줄지어 앉았다 수다가 들풀로 피어난 그 밭둑 사이에서 나는 보폭을 잃고 둥둥 떠다녔다 자주 길을 잃었지만 실밥이 옷자락에 묻어 나풀댔으므로, 집을 잃지는 않았다 바싹 마른 노을이 걷히면 물건을 팔거나 산 사람들은 읍내 하나뿐인 세탁소부터 들러 집으로 갔다 장터에 남은 바람이 빨랫감을 더 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로 불어왔다

 
 벚나무가지 바람이 수면으로 돌아온다
 벚꽃잎 신발 한 켤레 사 신고 하류를 향해 걸어간다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팝꽃 / 이민화  (0) 2010.01.28
흰자두꽃 / 문태준   (0) 2010.01.28
똥 / 이경림  (0) 2010.01.28
구슬이 구슬을 외 5편 / 이향지  (0) 2010.01.28
빗소리 외 / 안도현  (0) 2010.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