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똥 / 이경림

시인 최주식 2010. 1. 28. 22:22

/ 이경림

 

시어머니는 후반기 생의 반을 금쪽같은 아들을 도둑질해간
도척같은 나를 미워하는 힘으로 살다 가셨다
그 때는 나도 그 노파를 미워하는 힘으로 사는 것 같았다
내 딴엔 아무리 사랑하려 해도 그녀가 받아들이지 않으므로
나도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변비나 설사를 부르고 우리는 종일 번갈아 가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신경을 썼더니 똥이 안 나와”
그녀가 짜증스럽게 말했다
“나도 그래요”
나는 속으로 말했다
“어머니 똥 좀 잘 나오게 해 드려!”
남편이 눈을 흘금거리며 말했다.

 

시어머니의 똥 문제는 나를 삼십년 간 들볶았다.
언제부턴가 나는 나의 똥 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걸 알았다.
죄 없는 화장실 문짝이 너덜너덜 해지고 우리는, 서로 지쳐
시나브로 말이 없어지던 어느 날
시어머니는 화장실도 못 가고 누운 채
밤새도록 똥을 쌌다. 치우면 또 싸고 치우면 또 싸고.....
그 때까지 나는 사람의 속에 그렇게 긴 똥의 길이 똬리를 틀고 있는 줄 몰랐다.
새벽녘이 되자, 무슨 생각에선지 시어머니는 화장실에 가서 똥을 누겠다고 우겼다.
나는 밤새 그렇게 많은 똥을 내보내고도 여전히 무거운 그녀을 간신히 안고
변기 위에 앉혔는데 그녀는 금방 다시 방으로 들어가겠다고 또 우겼다
나는 헉헉대며 울 듯이
‘어머니, 계속 이렇게 똥이 나오는데 어떻게 들어가요?’
통사정을 하는데 그녀는
‘지금 똥이 문제야?’
하고 역정을 냈다. 할 수 없이 똥이 줄줄 새는 그녀를 안고
방으로 가는데 문득 그녀의 머리가 나의 팔 밖으로 툭, 떨어지는 것이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야 나는
역시 ‘똥이 문제’라는 그녀의 말이 옳았다는 걸 알았다.

 

시어머니는 그 때
길고 긴 똥과의 싸움에서 마침내 진 것이다. 

 

 

『다층』, 2006년 가을호

 

이경림 시인

 

1947년 경북 문경 출생
1989년 『문학과비평』 봄호에 「굴욕의 땅에서」외 9편으로 등단.
시집 「토씨찾기」「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상자들」2005년 렌덤하우스중앙
시평집 『울어라 내 안의 높고 낮은 파이프』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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