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신녀의 쇼핑 이야기 / 최금진
남자를 사야겠어
비염을 앓는 남자, 수상한 냄새를 못 맡는
뚱뚱하고 볼품없고 재고품 속에 섞여 있는 남자
딱딱하게 냉동된 그런 남자를 카트에 담아
삼 개월 할부로 사고 싶어
퇴근하고 돌아와
냉동실에서 한 서너 시간 두었다가 꺼내면
영문도 모르고 훌쩍훌쩍 울면서 두리번거리겠지
플라스틱 젖꼭지라도 물려주면 금세
눈알이 녹아내리는 남자
헐값에 덤으로도 얻을 수 있는
그 남자 속의 담백한 우울함을 우려내어
이혼하고 입맛을 잃은 우리 엄마에게도 한솥 끓여줘야겠어
안구건조증이 있는 남자, 눈을 똑바로 못 쳐다보고
커다란 귀가 잔뜩 늘어진 남자
한 발짝도 제 힘으론 못 걸어나가는 남자
그런 남자를 사야겠어
탁탁 칼로 잘라 맛있게 담아놓고 조금씩 꺼내
고수레 고수레, 동서남북 텅 빈 공간에 나누어주며 먹고 싶어
남자의 열등한 씨를 배는 것도 좋겠지
하루마다, 이틀마다 서둘러 출산을 해서
배고플 때마다 늘 혼자였던 사람들에게 입양시키면
외로움은 얼마나 캄캄한 어둠이었는지
그 남자의 아기들이 아장아장 걸을 때마다
행복은 얼마나 서글픈 것인지
알게 될까, 손톱이 길고 예쁜 남자
험한 일을 못하고 피둥피둥 게으름이 전재산인 남자
냉동고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남자
그런 남자를 사야겠어
지겨운,
병신 같은,
뼛국물을 우려내는 일 말고는 도무지 쓸데가 없는……
계간 <문예연구>봄호
최금진 시인
1970년 충북 제천 출생.
1994년 춘천교육대학교 졸업.
199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당선.
1998년 제4회 <지용신인문학상> 수상.
2001년 <창작과비평> 신인시인상.
2007년 시집 <새들의 역사>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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