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만도 못한 / 최종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주인은 개를 못 알아보는 경우가 흔하지만
개는 반드시 주인을 알아본다고 한다
그러니까 본래의 이치로는
주인이 개이고, 개가 주인일 것이다
왜 그런가 허면……
내 주를 가까이 모시는 사람들은
실제로 주의 얼굴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께서는 분명 종을 알아보실 것이다
주깨서 얼굴이 없는 이유는 이렇다
"네가 알몸이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인간의 밝은 눈에 보이는
이 모든 실체는 얼마나 진부하고 역겨운가?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다
하느님이 얼굴을 지니고 있다면
그 또한 비루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단박에 고기가 되어 푸줏간에 내걸릴 것이다
강아지라면 또 모를까, 인간에게는
결코 모습을 보이지 마옵소서!
<시와사람> 봄호
최종천 시인
1954년 전남 장성에서 출생
1986년 <세계의 문학>
1988년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
2002년 시집 <눈물은 푸르다> 시와시학사
2007년 <나의 밥그릇이 빛난다>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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