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검지의 긍지 / 유안진

시인 최주식 2010. 1. 28. 22:30

검지의 긍지 / 유안진


야훼와 아담의 최초 접촉(시스티나 성당 천정화)을 내게 맡긴
미켈란젤로는, 닿을 듯 말 듯 전광석화의 찰나적 서스펜스로
야훼의 무한 창조력이 나를 통해 아담에게 감전되었음을 보여 주었지
그렇게 인류문명의 전진방향을 지시하는 사명을 나에게만 부여했지
오직 나만이 그 신성한 약속의 심오함을 깨우칠 수 있었으니까

또 거룩한 십계판(모세)을 오른팔에 낀 모세가, 내게만 율법의 지시를 맡겼고,
압제와 횡포에 반항하기 위한(노예) 나의 역할로서, 관절이 치솟았다 구부려지게
그려, 비판적 지성과 해방 의지를 암시한 것도 미켈란젤로다운 선견이었지

그뤼네발트도 십자가에 묶인 예수(이젠하임 제단화)의 우편에서, 요한이 나를 통해 예수를 가리킴으로써 부활을 예고했고
레오나르도 다빈치 역시 나를 들어 올려 하늘을 가리켰고(성 요한), 나를 곧추세워 영웅의 단호한 의지(말 탄 나폴레옹)를 밝혔지

화가들만이 아니야, 시대를 불문하고 지시와 명령은 나에게만 맡기지,
엄지형은 부모 조상을 대신하여 멀찍이 있고, 장지는 장남 격이고,
넷째 약지라는 별명처럼 식구를 위해 어머니나 누이의 역할을 하고, 막내는 잔심부름을 맡아왔으나,
나만은 형제들의 감각적 의식과는 달리 정신적 자의식이 아주 강하지

형제들보다 가장 예민하고 탐구적인 나를 인지(人指)라고 부르는 이유도
타인을 의식하는 내 자의식 때문이겠지만, 이 자의식 때문에 나는 야곱처럼
자주 불안하고 반항적이 되어 나도 모르게 자주 움직이지만 아마도 진취욕구 때문일 거야

서양인들은 나를 통해 음식을 맛보고, 중국의 좌전도 내 별명을 식지(食指)라고 불렀으니,
관련인물들의 식욕 탓이겠지만, 물론 거의 무한정의
내 욕망 탓일 거야

나는 손가락질이라는 악역도 맡아
인류역사상 야만과 문명은 주로 나의 역할이었고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비밀과 비결도 나만의 역할이었지
형제들 중 가장 지성적이고 남성적인 나는
남성보다 더 남성적이며 손(手) 이상의 손 노릇을 맡아왔지
몸이 팔을 위해, 팔이 손을 위해서라면
손은 나 검지를 위해서라고 장담하니까. 

 

 

유안진 시인

 

  경북 안동에서 태어났고, 서울대 사범대 교육심리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으며 미국 플로리다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65년 ‘현대문학’에 시가 추천되어 작품활동 시작했다. 시집으로「달하」「절망시편」「물로 바람으로」「그리스도, 옛애인」「달빛에 젖은 가락」「날개옷」「월령가 쑥대머리」「영원한 느낌표」「구름의 딸이요 바람의 연인이어라」「누이」「봄비 한 주머니」「다보탑을 줍다」가 있다. 한국펜문학상 · 정지용문학상 · 월탄문학상 · 한국간행물 윤리위원회상 등을 수상했으며 서울대 소비자 아동학부 교수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