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조팝꽃 외 2편 / 김산옥

시인 최주식 2010. 1. 28. 22:39

조팝꽃 외 2/ 김산옥

 

꿀벌이 조팝꽃에 앉을 때

꿀벌은 자기 몸이 크다는 걸 안다

벌어질 크기도 깊이도 갖지 못한 조팝꽃 앞에서

떨림은 꿀벌의 몫이다

 

조팝꽃이 들인 방이 하도 작고 낮아

앉는 순간 꿀벌은 조팝꽃에게

너무 가까이 가고 만다

뒤척이기에도 조심스러운 곳

 

조팝꽃에 앉기 위해

날개가 뽑혀나가도록 집중하는 꿀벌

한 번 맞춰진 초점

다시 초점이 되지 않는다

 

확인  / 김산옥

 

살구나무집 금영이는 학교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어보고는 툇마루에 엎드려

숙제를 했다 뒷산까지 날아온 뻐꾸기

엄마의 잔기침을 끊어 놓았다

엄마의 기침소리가 멈출 때마다

금영이는 연필을 놓고 일어나

방문을 열어보고는 했다

 

           

평야의 늑대 / 김산옥

 

내가 서성이는 철원평야 끝보다

어둠은 더 멀리까지 펼쳐져 철책을 넘는다

어둠에 파묻힌 능선 아래

흩어져 졸던 불빛들이 무거운 눈꺼풀을 내리고

나는 모가지를 쳐든다

온기 없는 달의 자궁 속에 머리를 디밀고

둥글게 목을 비틀어 냄새를 맡는다

그대가 버리고 간 달은 너무 오래 비워져

바람 냄새 가득한 냉골이다

들판을 달린다

어둠을 태우고 달에 닿도록 출렁이는 나의 척추

나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한겨울 들판에

얼어붙은 그대의 미소와

화약 같은 나의 눈빛을 내려놓고

그대 가슴 밑바닥에서 천년 동안 자다

환하게 터져 사라지고 싶다

심장을 열고 붉은 잉크를 찍어 편지를 썼다

온 신경이 곤두서

나는 울부짖는 순간 사나운 늑대로 변해

그대를 잊을 것이다

거세지는 눈발을 뿌리치고 달린다

모든 감각이 목구멍으로 모여 울음이 익는다

그대가 차오르면 나는 한 마리 늑대

그대 새하얀 설원에

검은 먹물을 흘린다

 

시집 <앵무새 재우기> 2008. 북인

 

   

김산옥 시인

 

1971년 강원도 인제 출생

간호사관학교 졸업

광주, 청평, 창동에서 간호장교로 복무하다 육군대위로 전역함

2005년 <시와반시>로 등단

2008년 시집 <앵무새 재우기> 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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