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통조림 / 마경덕

시인 최주식 2010. 1. 28. 22:36

조림 /  마경덕

                                                  

   밀봉된 바다, 무게 400g. 꽁치의 짭조롬한 눈물이 캔에 담겨있다. 천사백 원을 지불하면 원터치로 열리는 진공의 바다, 같은 용량의 인스턴트 바다들이 마트 진열대에 쌓여있다. 제발 저를 당겨주세요. 고리는 밑바닥에 바짝 들러붙었다. 누가 안전핀을 뽑듯 저 고리를 당겨준다면… 뚜껑이 열리기까지는 얼마를 기다려야 하나. 유통기한을 며칠 남긴 꽁치의 눈빛이 흐리다. 바코드가 찍힌 저 바다는 누군가의 식탁으로 초대되어 참았던 숨을 왈칵, 토할 것이다. 순간 손을 물어뜯을지도 모른다. 뚜껑을 조심하라. 열 받은 것들은 뚜껑이 열리기 쉽다. 

 

  '즉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일회용 바다를 사들고 간다. 흔들면 파도소리가 들리는 둥근 관, 머리가 사라진 토막 난 죽음이 떠있다. 캔 속엔 눈알도 꼬리도 빠진 물렁한 꽁치토막들, 썩지 않는 지루한 권태뿐이다.

 

즐거운 찰흙놀이 /  마경덕

 

                                                   
   내 몸 어딘가에 흙의 유전자가 남아 있다. 밀가루반죽 떡반죽을 보면 자꾸 치대고 싶은 버릇은 내 손가락에 빗살무늬토기를 빚던 선조의 피가 흐르기 때문. 거슬러 거슬러 오르면 찰흙놀이를 좋아하던 그 분이 계셨고,

 

   땅에 비가 없고 초목도 없고 빈들에 안개만 자욱할 때, 심심한 그 분이 독수리 까마귀 코끼리 사자도 빚으시고, 고운 흙으로 남자도 빚으시고  알고 보니 말씀으로 지으신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도 흙이었고, 즐거운 공작시간 내가 만든 자전거와 모자와 꽃게의 재료도 흙이었고,

  갈빗대로 만든 가냘픈 여자만 물렁하지 않고,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여자이고,

 

  목욕탕에 가보면 기골이 장대한 남자는 금세 뛰쳐나온다.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여자는 사골을 우려내듯 뜨거운 탕에서 오래 견딘다.      
 
  늙은 어머니, 자꾸 바닥에 누우신다.  땅과 가까워질수록 몸이 편하시다. 거슬러 거슬러 가면 찰흙놀이를 좋아하던 어떤 분이 계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