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린 날의 첫 줄 / 문인수
비쩍 마른 검둥개 한 마리가 잰걸음으로 지나간다.
네 발바닥,
뜨고 닿는 동작이 순서대로 다닥다닥 바쁘다. 꽃 자국 나는 바닥과 병뚜껑 따는 것 같은 허공이 지금
일직선으로 길게 달라붙는 중이다. 브라더미싱.
어머니 재봉틀 소리 멀어져가는 것 같다. 저 개, 방향을 꺾어 이번엔 또 가로로 자를 댄 듯
내 눈썹 위를 오래 긋는다. 지평선에도 박음질 자국이 만져질까, 나는 자꾸
멀쩡한 데를 공연히 스스로 봉하는 것 아니냐. 하긴,
상처 아닌 행로가 어디 있을까. 날지 못하는 흰 날개, 양쪽 경치는 그저 차디차다. 어딜 가나
벗어재낄 수 없는 틈바구니, 이것이 길이다. 나는 무심코
저 개를 한참 밀고 있구나.
이쪽저쪽 끌어다 붙여 마음이 모처럼 광활한 아침이다. 무수히 꿰맨 흉터,
여기서는 안 보이는 곳으로 환하게 빠져나갈 것이다.
사랑한다사랑한다사랑한다는 말,
개 한 마리가 첫 줄 타자처럼 새까맣게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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