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정육점의 비밀/최일걸

시인 최주식 2010. 1. 29. 23:09

정육점의 비밀
 
홍등가 가랑이 사이에 은밀하게 열려 있는 정육점은
윤락업소와 전혀 구분되지 않았다
고기가 여자나 살덩어리이긴 매한가지여서
구미를 당기게 하려면 핏빛으로 물들여야 한다
물론 정육점 주인은 호객행위는 하지않는다
그는 상호 대립하는 것들을 저울질하며
불협화음을 듣는 게 취미,
저울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면
그는 단호하게 칼을 움켜쥔다
어떤 것도 해부학에 능통한 그의 칼날을 비켜갈 수 없다
그의 손을 거쳐 간 소들이 사진으로 남아
표창장처럼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사진 속의 그는 언제나 환하게 웃고 있고
소들은 일제히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몇 등분으로 나뉘어 쇠꼬챙이에 꿰어진
자기 자신을 응시한다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지만
허기진 도마와 날 선 칼을 생각하면 멈출 수 없다
단속이 심해져 홍등가엔 발길이 뚝 끊겼지만
그의 정육점은 문전성시,
도대체 저 거대한 냉동고엔 얼마나 많은
난도질과 주검이 냉동 보관되어 있는 걸까
이따금 창녀가 인생 상담하러 오면
그는 친절하게 안락한 저울 위로 안내한다
그때마다 도마 위에 꽂힌 칼이
날을 번득이며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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