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 증후군 외 1편 / 김경선
꼭 물 풍선 같아요
누군가 조금만 충격을 줘도 곧 터질 것만 같지요
그래서 내 심장은 내 것이 아닐 때가 더 많아요
샌드백처럼 누구든 와서 치고 박고 해요
며칠 전엔 이 부장이 축구공처럼 걷어찼지요
반칙이었지만 아무 말도 못했어요
어제는 경리담당 미스 리가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어요
오늘은 아침부터 사장이
시말서를 쓰라고 어퍼컷을 날려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지요
내일도 누군가 심장을 겨냥해 오겠죠
꿈속에서조차 울렁거리는 심장 박동소리에
내가 먼저 놀라 잠이 깨곤 해요
집에서는 마누라에게도 스파링 상대지요
마누라는 거침없이 잽을 날려오지요
날마다 링 위에서 진땀을 흘리다
그로기 상태로 돌아와서는
동네 문방구 구석에서 뿅망치로
뿅뿅뿅!
만만한 두더지나 때려잡지요
두레문학 (2007년 가을호)
세탁기는 출산 중이다 / 김경선
세 군데를 들러 그녀를 만났다
통뼈인 그녀는 엉덩이가 펑퍼짐해서
자식도 쑥쑥 잘 낳을 거라고 했다
그녀의 체온은 220볼트
끈덕지게 사내를 덮치고
스파크처럼 튀어 올랐다
그녀의 괴성은 아래층 사내까지도 몸 달게 하고
독 오른 눈빛으로 문을 두드리게 했다
모든 정사는 쉽게 지치지 않는 법
그녀는 표정 한 번 바꾸지 않고
위층 아래층 사내를 가리지 않고
날마다 받아들였다
누가 뭐래도 최고였던
그녀,
얼마 전부터 자꾸 앓는 소리를 낸다
내 관절의 통증과 지지직 합선이 된다
노산인 그녀
덜컹거리며 만삭의 몸을 돌리기 시작한다
만성 요통인 내 허리가 뻐근해 온다
그녀의 불규칙한 신음이 잦아졌다
마지막 출산을 끝내면
베란다 구석에 편안히 잠들 그녀
오랫동안 기다려온 휴식이 마지막 손님처럼 찾아왔다
폐경이다
2007년 젊은시인들 제3집 <피터팬 사막에 가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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