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빗 외 1편 / 양은창
담양 장에서 날렵한 참빗을 하나 샀다
요즘 세상에 무슨 참빗이냐고
아내는 한사코 말렸지만
행여 외도라는 게 이런 것인가
평생을 바람만 머리에 이고
살았다는 여자를
몰래 데리고 오는 길
아직도 푸른 색정이 감도는
빗살을 살살 문지르며
한 성깔 하던 여자,
마디마다 맺혀있는
빛바랜 사연이 궁금하다
참빛과 참빗은 거기서 거기지만
천년은 살아야 늙는 여자,
빛으로 오는 길이 얼마나 멀었던지
촘촘한 걸음마다
씻고 달랜 몸아직도 섬뜩하다
헤엄 / 양은창
아내는 아프다
해묵은 병 한 이십 년쯤 앓다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죽은 사람들은 모두 강을 건넌다는데
정작 자신은 헤엄을 칠 줄 모른다고
걱정을 했다
그러나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지리산 산골
강가에서 태어난 나는
헤엄을 곧잘 친다
두 세 길 물 속에서도
통나무 하나쯤은 거뜬히 나른다
게다가 헛개비 같은 몸뚱어리쯤이야
식은 죽 먹기라고 달래고 나니
그제서야 거친 숨을 고르며
깊은 잠에 잠긴다
그런데 잠든 얼굴 들여다 보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영혼들은 모두
하늘을 헤엄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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