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평상 / 고영민

시인 최주식 2010. 1. 29. 23:23

평상 / 고영민

 

볼일을 보려고

읽던 책을 잠깐 평상에 내려 놓았는데

휘리릭, 바람이 읽던 책을 반을 읽고 간다

삼복에 끙끙 오기로 잡고 있던

왕필본 老子 한권을 침도 묻히지 않고

단숨에 반을 읽어 넘겨 버렸다

 

책장 넘기는 것을 서서 지켜본다 휘릭, 휘릭

더 이상 章이 넘겨지지 않는다

뻔하다는 걸까

나무 아래 매미 소리만 無爲하다

불가슴에 냉수 한 사발을 들이켜고

읽던 쪽을 찾아 가만히 책을 엎어놓았다

한 평 공터,

널평상 같은 하늘 아래

수수머리가 간당거린다

붓자루 같은 미루나무 끝이 논다

책따위가 무슨 재미랴,

바람아

 

<열린시학> 200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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