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연남해댁 / 이민화
남해에서 태어나 매생이 아내가 된 여자
한번도 바다를 떠난 적이 없다 하여
별명이 붙여진 천연남해댁,
출세한 아들이 찾아와 편히 모시겠다며
바다를 팔자고 속닥거린다 덜컹,
아들 꼬드김에 팔자를 팔고 상경한 한양 땅
별과 달이 높아 눈물 마를 날이 없다
가슴 웅크린 남해는 지금 일몰의 시간
뻘밭 소라속 게는 밤새껏 문을 엿보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을 텐데,
때마다 올라온 반찬에 매생이는 없다, 어쩌다
매생이 매생이가 먹고 싶다고 옹알이를 하면
바람 먹은 창문 속 달빛이
바다 한 접시 입술에 갖다 댄다
달빛이 살구꽃을 부풀리는 밤,
자다 말고 정원에 나가 구멍을 판다
구멍구멍 흘러나오는 개미를 입에 넣고
달다달다 외치던 천연남해댁,
살구가 미더덕처럼 보이던 어느 날
나무에 올라 매생이가 되었다
게 발자국 남기고 먼 바다로 떠났다
<다시올문학> 200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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