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진화론(進化論) 외 1편 / 정다혜

시인 최주식 2010. 1. 29. 23:26

진화론(進化論) 외 1편 / 정다혜

 

내 늑골에서 떼어낸 연골로

새로운 콧대를 만들었다.

늑골이 코로 진화해 오는데

정확하게 세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세 시간이라면

시시한 시 한 편을 쓸 시간

교통사고로 지워졌던 내 코가

일부 복원됐다. 아니 이건 진화

어둔 내 몸속에서 웅크리고 살았던

늑골의 순한 뼈가 몸 밖으로 나와

콧대를 세우며 살게 된 것은

이건 분명한 진화다. 늑골이 코로

진화해서 처음 맡은 냄새는

제 살의 상처에서 나는 불 냄새

아직 다 지워지지 않은 피의 냄새.

진화론의 이름값 하기 위해

나의 코는 세상의 지저분한 냄새까지

다 맡으며 살아야 할 것이지만

세 시간, 내 코가 복원되는 동안

나의 피눈물도 시詩로 진화했다.

 

<삶과 꿈> 2008  좋은시

 

 

시의 경제학 / 정다혜

 

시 한 편 순산하려고 온몸 비틀다가

깜박 잊어 삶던 빨래를 까맣게 태워버렸네요

남편의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을

내 시 한 편과 바꿔버렸네요

어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문학상을 받고

어떤 시인은 꽤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나는 시 써서 벌기는커녕

어림잡아 오만 원 이상을 날려버렸네요

태워버린 것은 빨래뿐만이 아니라

빨래 삶는 대야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려

그걸 닦을 생각에 머릿속이 더 새까맣게 타네요

원고료는 잡지구독으로 대체되는

시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시의 경제는 언제나 마이너스

오늘은 빨래를 태워버렸지만

다음엔 무얼 태워버릴지

속은 속대로 타는데요

혹시 이 시 수록해주고 원고료 대신

남편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 보내줄

착한 사마리언 어디 없나요

 

<불교문예>  200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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