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進化論) 외 1편 / 정다혜
내 늑골에서 떼어낸 연골로
새로운 콧대를 만들었다.
늑골이 코로 진화해 오는데
정확하게 세 시간이 걸렸다.
나에게 세 시간이라면
시시한 시 한 편을 쓸 시간
교통사고로 지워졌던 내 코가
일부 복원됐다. 아니 이건 진화
어둔 내 몸속에서 웅크리고 살았던
늑골의 순한 뼈가 몸 밖으로 나와
콧대를 세우며 살게 된 것은
이건 분명한 진화다. 늑골이 코로
진화해서 처음 맡은 냄새는
제 살의 상처에서 나는 불 냄새
아직 다 지워지지 않은 피의 냄새.
진화론의 이름값 하기 위해
나의 코는 세상의 지저분한 냄새까지
다 맡으며 살아야 할 것이지만
세 시간, 내 코가 복원되는 동안
나의 피눈물도 시詩로 진화했다.
<삶과 꿈> 2008 좋은시
시의 경제학 / 정다혜
시 한 편 순산하려고 온몸 비틀다가
깜박 잊어 삶던 빨래를 까맣게 태워버렸네요
남편의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을
내 시 한 편과 바꿔버렸네요
어떤 시인은 시 한 편으로 문학상을 받고
어떤 시인은 꽤 많은 원고료를 받았다는데
나는 시 써서 벌기는커녕
어림잡아 오만 원 이상을 날려버렸네요
태워버린 것은 빨래뿐만이 아니라
빨래 삶는 대야까지 새까맣게 태워 버려
그걸 닦을 생각에 머릿속이 더 새까맣게 타네요
원고료는 잡지구독으로 대체되는
시인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
시의 경제는 언제나 마이너스
오늘은 빨래를 태워버렸지만
다음엔 무얼 태워버릴지
속은 속대로 타는데요
혹시 이 시 수록해주고 원고료 대신
남편 속옷 세 벌과 수건 다섯 장 보내줄
착한 사마리언 어디 없나요
<불교문예> 2008.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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