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미생지신, 증자의 돼지…2000년 전 중국 얘기가 요즘도 떠도는 이유 [중앙일보]
유가 묵가 도가 법가 … 300여 년에 걸친 치열한 논쟁
오늘에 맞게 재해석 하면 인류에 도움될 지혜 수두룩
유럽 문화의 뿌리로 고대 그리스 문명을 꼽습니다. 서양에 그리스가 있다면 동양엔 중국이 있습니다. 아랍·인도도 유구한 문화를 자랑하지만 우리에겐 가까운 중국 문화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런 만큼 중국 문화, 중국 정신세계를 아는 것은 우리 자신을 제대로 하는 한 방법입니다. 뿐만 아니라 현대 중국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겁니다. 거기 맞춤인 책 을 골랐습니다.
백가쟁명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에버리치 홀딩스
728쪽, 2만9500원
공자에게 제자 자공이 물었다. “어떻게 해야 지식인(士)이라 부를 수 있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행하는 데 늘 부끄럽게 생각하고, 사방에 사신으로 나아가 군주의 명을 욕되게 하지 않으면 가히 지식인이라 부를 수 있다.” “다음 가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재목이 되기엔 부족하지만 친척들이 효성스럽다 말하고 이웃들이 윗사람을 공경한다 말하면 그에 버금가는 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또 어떻습니까.” “천박하고 고집스런 소인이라도 말이 믿을 만하고 행동이 과감한 자는 다음 가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그럼 지금 정치하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자공이 이어 묻자 공자는 탄식하며 말을 잇는다. “아, 도량이 협소하고 식견도 천박한 이들이니 말해서 뭣하겠느냐.”
예부터 정치인들은 욕 먹는 존재였는가 보다. 우리네 정치판에서도 도무지 타협이란 걸 찾아볼 수 없는 걸 보면 그들의 도량이 좁은 건 맞는 말 같다. 하지만 식견이 꼭 천박하고는 할 수 없겠다. 최근 소란스러웠던 것처럼 정치인들이 ‘미생지신’이니 ‘증자의 돼지’니, 고사성어에 빗댐으로써 논쟁의 품격(?)을 높이고 있으니 말이다. 쓸데없이 문자 쓴다고 뭐라는 사람들도 있는 모양인데 달을 보지 않고 손가락만 보는 짓 같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는 데 고사성어 인용만큼 효과적인 게 또 어디 있겠나. 또한 잘만 쓴다면 직접적인 비난을 피함으로써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효과도 더불어 얻을 수 있을 터다.
서평을 쓰면서 정치판 얘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목침으로도 쓸만한 두께의 이 책이 하고자 하는 얘기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삼국지 강의』 등으로 이미 한국에서도 두터운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는 저자는 이 신작에서 “중국 민족사에서 가장 화려한 악장(樂章)”인 ‘선진제자(先秦諸子)’들의 백가쟁명(百家爭鳴)이 이 시대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지 천착한다.
그는 “백가쟁명은 2000년 전 중국 역사상 가장 길고 격렬했던 지성인들의 싸움판이 아니라 앞으로 2000년을 이어갈, 서양인은 죽어도 이해 못할 동양문화의 지혜의 결정이자 중국 문화사에서 최초로 시도된 문화대혁명”이었다고 단언한다. 겨우 철기시대로 접어든 때나 어울릴 법한 유세객들의 쉰 목소리들이 아니라 앞으로도 “여전히 빛을 발하는 사상이며 깊이 새겨야 할 이름”들이라는 것이다. 사실 그렇다. 유가(儒家)를 시작으로 묵가(墨家), 도가(道家), 법가(法家)로 이어지는 300년에 걸친 대논쟁에 비한다면 이후 2000년 동안 등장한 사상 철학은 극히 빈곤하고 초라하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다고 저자가 제자백가들을 찬양만 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들의 치명적 약점에 통쾌한 일격을 날린다. 제자백가 중 가장 많이 활용된 건 유가지만 사실 속임수였다. 역대 왕조의 통치가 가능했던 건 음모와 계략, 엄격한 형벌이었을 뿐 ‘인애(仁愛)’로 요약되는 유가는 주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데 이용돼 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말한다. “논어 반 권으로 천하를 속인다.”
가장 좌파적인 묵가도 백성을 위해 애썼지만 결국 민권보다 왕권에 무게를 두었고, 도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無爲) 얻은 게 없었으며, 천하를 생각했던 선배들의 비현실성을 비웃었던 법가는 오직 군주만을 위해 피를 뿌렸다.
이제 제자백가를 오늘에 맞게 적용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제자백가의 전면적, 구체적, 직접적 계승은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추상적 계승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분석과 핵심 파악, 색채 제거, 재해석이라는 네 단계를 거쳐 이뤄진다. 예컨대 한비(韓非)는 군주독재를 지원하기 위해(분석) ‘공평’을 주장했는데(핵심), 군주독재는 나쁘지만 공평은 보편적 가치를 지닌 것이니 받아들이면 된다(탈색). 이렇게 해서 ‘회색’이 된 제자백가는 중국뿐 아니라 인류 전체에 적용될 수 있는 사상이 된다.
따라서 이런 재해석이 나올 수 있다. “묵가는 가정을 건설하기 위한 아름다운 이상을, 도가는 인생을 이끌어가는 지혜의 결정을, 법가는 변혁에 대응하는 사상 자원을, 유가는 민심을 모으는 가치체계를 남겼다.” 세계 인류가 공동의 이상을 실현하는 길로 더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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