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 전서은
한 고랑 남은 배추를 실어 보낸
비닐하우스 작목반 이씨는
대낮부터 소주 몇 병과 함께
밭고랑에 누어 버렸다
태풍이 몰고 간
아내는 지금
구름 밭을 메고 있을까
충혈된 눈동자가 허공에 박힌다
김장배추 모종하던 늦 여름
강 건너 곧 입주할 임대 아파트가
쑥대처럼 쑥쑥 오르는 것을 보며
한나절 허리 한 번 펴지 않던 아내
그 날도 이씨는 화투판에서 밤을 새웠다
뒤통수를 치고 지나는 가을
곪아버린 상처는
배추 속으로 노랗게 살이 오르고
수액차고 오르는 시퍼런 겉잎의 시간에는
촘촘히 애증의 가시가 돋혔다
몇 움큼의 소금으로도 절여지지 않는 울분을
되새김질하며 그는
애벌레로 움크려 이 겨울,
더운 물 콸콸 쏟아지는 새 아파트에서
아내와의 환생을 꿈 꾸며
긴 긴 잠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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