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섬을 잃다 외 1편 / 양은창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09

섬을 잃다 외 1편 / 양은창


종일 남한강을 뒤져서 수석 한점을 얻었다

집에 돌아와 탁자 위에 두고

요모조모를 뜯어보니 자태가 꼭 외딴섬 같다

파도에 밀려나 안개 속에 묻힌 바위섬

가만가만 듣자니 갈매기가 우는 것 같기도 하다

수심을 등에 업고 잠이 든 것 같기도 하다

 

이러저런 행복한 고민에 빠져 돌을 뜯어보는 사이

초등학생 아들이 들어온다

자칭 돌을 좀 안다는 놈이다

너는 이게 뭐 같으냐

아빠 그건 똥섬이에요

주저 없이 던진 한마디 품평에 안개가 확 걷힌다

수많은 갈매기들 모두 날개를 접는다


언제부터인가 내 눈에는 콩깍지가 씌워졌다

흔히 시인이란 사물을 꿰뚫어보는 눈을 가진 자

그러나 돌을 돌로 보지 못하는 사시

언제나 뒤집어 보려고 한 죄만 주마등이다

침침한 눈을 부릅뜨고 보아도

보이지 않는 까마득한 한점 섬

가장 낮은 이름으로 불리는 똥섬


그 섬을 눈앞에서 잃었다

 

 

길눈이 어둡다 / 양은창

 

나는 유독 길눈이 어둡다

을지로에서 종각까지 택시를 탄 일도 있다

지인들이 내비게이션이라도 사서 다니라는 걸

여태 마음에만 두고 그럭저럭 살다보니

그것도 필요가 없어졌다

이미 길을 잃을 배짱을 잃었기 때문이다

 

길을 잃는다는 것은 젊기 때문이다

잃지 않는 길은 길이 아니다

 

이 지상에서 길을 가장 잘 아는 건 강이다

길을 모르면 강물에게 물어볼 일이다

하늘을 가장 잘 아는 건 구름이다

하늘이 보이지 않으면 구름에게나 물을 일이다

 

허튼짓을 할 수 없는 나이가 되면

강이나 구름에게 길을 묻는다

비로소 갈 수 없는 길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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