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겨울 / 전서은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10

겨울 / 전서은

 

한 고랑 남은 배추를 실어 보낸

비닐하우스 작목반 이씨는

대낮부터 소주 몇 병과 함께

밭고랑에 누어 버렸다

태풍이 몰고 간

아내는 지금

구름 밭을 메고 있을까

충혈된 눈동자가 허공에 박힌다

김장배추 모종하던 늦 여름

강 건너 곧 입주할 임대 아파트가

쑥대처럼 쑥쑥 오르는 것을 보며

한나절 허리 한 번 펴지 않던 아내

그 날도 이씨는 화투판에서 밤을 새웠다

뒤통수를 치고 지나는 가을

곪아버린 상처는

배추 속으로 노랗게 살이 오르고

수액차고 오르는 시퍼런 겉잎의 시간에는

촘촘히 애증의 가시가 돋혔다

몇 움큼의 소금으로도 절여지지 않는 울분을

되새김질하며 그는

애벌레로 움크려 이 겨울,

더운 물 콸콸 쏟아지는 새 아파트에서

아내와의 환생을 꿈 꾸며

긴 긴 잠을 준비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