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어리고 앳된 울음 / 강미정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16

어리고 앳된 울음 / 강미정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바보 이반이 말했지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마라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잖아요

아이는 까만 눈을 깜빡이며 배시시 웃었지

천진스레 눈을 맞추는 맑은 그 눈빛, 무서워라

살아있는 가장 큰 일은 밥을 먹는 일,

어린 눈은 자꾸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보드랍게 목을 감고 입을 맞추지

고 어리고 앳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내 마음은 안쓰럽고 서늘한 슬픔이 돋아

내 손에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하고야 말겠다

아랫동네 초상이 난 집을  지날 때

저 도둑놈의 집, 사람들이 굳은살 박인 손을 들어

삿대질을 해도 퉤퉤 침을 뱉으며 가도

죽은 저 사람이 딱 한 번 넘었다는 담도

실은 어리고 앳된 울음이 담 넘어갔을 때였겠지

무서워라, 담을 넘는 어린 울음 쪽으로

발이 동동거려져 내달렸었겠지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2008. 문학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