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고 앳된 울음 / 강미정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바보 이반이 말했지
손에 굳은살이 박이지 않으면 밥을 먹지 마라
밥이 없으면 라면 먹으면 되잖아요
아이는 까만 눈을 깜빡이며 배시시 웃었지
천진스레 눈을 맞추는 맑은 그 눈빛, 무서워라
살아있는 가장 큰 일은 밥을 먹는 일,
어린 눈은 자꾸 나를 엄마라고 부르며
보드랍게 목을 감고 입을 맞추지
고 어리고 앳된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내 마음은 안쓰럽고 서늘한 슬픔이 돋아
내 손에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무엇이든,
어떤 일이든 하고야 말겠다
아랫동네 초상이 난 집을 지날 때
저 도둑놈의 집, 사람들이 굳은살 박인 손을 들어
삿대질을 해도 퉤퉤 침을 뱉으며 가도
죽은 저 사람이 딱 한 번 넘었다는 담도
실은 어리고 앳된 울음이 담 넘어갔을 때였겠지
무서워라, 담을 넘는 어린 울음 쪽으로
발이 동동거려져 내달렸었겠지
시집 <그 사이에 대해 생각할 때>2008. 문학의전당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안구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 유형진 (0) | 2010.01.31 |
---|---|
빈집 / 박후기 (0) | 2010.01.31 |
복음 약국 / 노향림 (0) | 2010.01.31 |
청포도 과수원 / 고영 (0) | 2010.01.31 |
할매 말에 싹이 돋고 잎이 피고 / 고재종 (0) | 2010.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