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뿔논병아리 외 1편 / 이영옥

시인 최주식 2010. 1. 31. 20:57

뿔논병아리 외 1편 / 이영옥


 

뿔논병아리 어미가

갓 부화한 새끼를 등에 업고 강을 헤엄쳐 가고있다

어미의 마음이 등 쪽으로 온통 쏠려있다

누구를 업는다는 것은 기꺼이 져 주는 일

이기기 위해 지는 게 아니라 몸을 낮춰 깨끗이 지는 일

져 준다는 것은

바닥에 팽개치지 않고 자신보다 높게 올려

떠받들어 전부를 사랑해 주는 일

그 무게에 등이 휜 다해도 눈부시게 감당하는 일

완전무결하게 진 자세로

세상의 물살을 갈퀴로 먼저 살살 헤집어 주는 일

아이 둘을 업어 키웠던 나는

다 커 버린 지금도 가끔 업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닥이 되었다가 우뚝 일어서주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업는 다는 것은 뒤통수의 느낌만으로

뒤뚱거리며 오는 걸음마의 방향을 알아맞히는 일이며

두 팔을 뒤로 내민 순간 자신은 까맣게 잊는 일이다

뿔논병아리가 지나간 물길이 부드럽게 닫힌다

어린것들을 업어 주려고 강은 저렇게 굽이굽이 휘어지는 것이다

 

꽃의 기호 記號 / 이영옥

 

왕벚나무 둘레가 가장 환했던 날

찬 빗발이 나를 캄캄하게 꺼뜨리고 있었다

너무 가벼워 무게를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이

허공에서 내려오는 시간

뜨겁게 피어난 순간들이 차가운 이마를 들이대고 있었다

수 백 번 망설이다 피워 낸 내 사랑 어이없이 지고 말았다

펄럭이며 떠다니던 열망의 돛대가 제대로 접히고 있었다

나무 아래로 방울방울 스며드는 하얀 꽃잎들

탄생한 날 죽음을 맞는 하루살이를 위해

그때 막 수은등에 불이 들어왔고

아무데도 닿을 수 없었고 어떻게 설명 될 수 없었던

그대와 나의 한 시절이 방점을 찍으며 끝장나고 있었다

   우리가 비바람을 견뎌 얻은 것은 파낼 수 없는 火印이었고

가슴에 무늬 진다는 것은 아픈 생의 한 지점에

뜨거운 그대를 물려놓고 나를 옮겨 오는 일이었다

 

<다시올문학> 2008. 가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