뿔논병아리 외 1편 / 이영옥
뿔논병아리 어미가
갓 부화한 새끼를 등에 업고 강을 헤엄쳐 가고있다
어미의 마음이 등 쪽으로 온통 쏠려있다
누구를 업는다는 것은 기꺼이 져 주는 일
이기기 위해 지는 게 아니라 몸을 낮춰 깨끗이 지는 일
져 준다는 것은
바닥에 팽개치지 않고 자신보다 높게 올려
떠받들어 전부를 사랑해 주는 일
그 무게에 등이 휜 다해도 눈부시게 감당하는 일
완전무결하게 진 자세로
세상의 물살을 갈퀴로 먼저 살살 헤집어 주는 일
아이 둘을 업어 키웠던 나는
다 커 버린 지금도 가끔 업어 주고 싶을 때가 있다
바닥이 되었다가 우뚝 일어서주는 기쁨을 알기 때문이다
업는 다는 것은 뒤통수의 느낌만으로
뒤뚱거리며 오는 걸음마의 방향을 알아맞히는 일이며
두 팔을 뒤로 내민 순간 자신은 까맣게 잊는 일이다
뿔논병아리가 지나간 물길이 부드럽게 닫힌다
어린것들을 업어 주려고 강은 저렇게 굽이굽이 휘어지는 것이다
꽃의 기호 記號 / 이영옥
왕벚나무 둘레가 가장 환했던 날
찬 빗발이 나를 캄캄하게 꺼뜨리고 있었다
너무 가벼워 무게를 가질 수 없었던 것들이
허공에서 내려오는 시간
뜨겁게 피어난 순간들이 차가운 이마를 들이대고 있었다
수 백 번 망설이다 피워 낸 내 사랑 어이없이 지고 말았다
펄럭이며 떠다니던 열망의 돛대가 제대로 접히고 있었다
나무 아래로 방울방울 스며드는 하얀 꽃잎들
탄생한 날 죽음을 맞는 하루살이를 위해
그때 막 수은등에 불이 들어왔고
아무데도 닿을 수 없었고 어떻게 설명 될 수 없었던
그대와 나의 한 시절이 방점을 찍으며 끝장나고 있었다
우리가 비바람을 견뎌 얻은 것은 파낼 수 없는 火印이었고
가슴에 무늬 진다는 것은 아픈 생의 한 지점에
뜨거운 그대를 물려놓고 나를 옮겨 오는 일이었다
<다시올문학> 2008.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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