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어 파일 같은 / 김연성
잎들은 어디에도 등록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길들이 무덤으로 흘러갔지만 어두워졌다 밝아지는 모든 밤과는 무관하였다
대지가 천천히 하품을 하는 희끗한 아침이면
직계존비속이 많은 늙은 나무가 길가에 홀로 서있는 풍경은 꼬부라진 길처럼 외따롭다
가지 끝,
허공의 깊은 곳까지 악착같이 움켜쥐고 있던 잎들이 분리수거함 옆에 수북이 쌓여있다
폐기처분을 기다린다는 것은 스스로 고려장을 원한 것이 아니다
신분변동일은 과거의 행적일 뿐 아무도 다가올 겨울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돌아올 수 없는 길 위에서 절망이란 함부로 내 뱉을 수 있는 고백이 아니다
불량식품 같은 세월 앞에서
낮은 목소리로 가만가만 불러보고 싶은 것이 아직 남아있을까
목에 걸린 붉은 가시 같은 기침 몇 잎,
토, 토하고 싶다
돌아보면 모두 힘겹게 붙어있거나 곧 떨어질 나뭇잎 같은 것
클리어 파일에 보관된 밤의 큰 잎사귀가 뚝뚝 떨어진다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검은 날들이 몰려오리라
잎들은 모든 미래를 고지거부 할 것이다
현대시 (2008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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