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전태일문학상 우수작>
김밥말이 골목 / 최일걸
암초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따개비모양
봉제공장들이 저를 단단하게 오므린 채 거꾸로 서서
수천대의 재봉틀로 하루를 돌린다
자꾸 달아나는 시간을 노루발로 고정하고
아찔한 곡선박기로 내일을 꿈꿔보지만
어김없이 되돌아박기가 여공들을 꿰매버린다
햇빛 한 점 안 들어오는 지하 공장은 먼지로 포화상태,
재단사의 가위질은 쉼 없이 여공들의 꽁무니를 베어내지만
그래도 김밥말이 골목은 그녀들의 꼬리뼈에 매달려 있다
재단사의 줄자가 정오를 휘감으면
봉제공장 거리의 봉합선이 뜯기고
여공들이 한꺼번에 밥알처럼 쏟아져 나와
한 땀 한 땀 김밥말이 골목으로 향한다
양은냄비보다 먼저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여공들은
수다를 첨가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피부색도 다르고 언어도 잘 통하지 않지만
김밥말이로 돌돌 말아 한통속이 된다
라면 다발과 함께 풀어지는 그녀들의 일상이
식당 아줌마의 손길을 거쳐 김밥에 뒤섞인다
식당 아줌마가 손으로 김밥을 꾹꾹 누를 즈음이면
그녀들은 도무지 열릴 것 같지 않다
접시에 담긴 김밥을 묵묵히 바라보며
그녀들은 옆구리가 터진 김밥처럼
네팔로 필리핀으로 소말리아로 연변으로
38선 이북으로 삐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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