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문명의 식욕 / 배한봉

시인 최주식 2010. 2. 1. 23:06

문명의 식욕 / 배한봉


옷의 식욕은
왕성하다, 성욕보다 수면욕보다 힘이 세다

나는 옷의 배를 불리는 양식이다

양말을 신자, 발이
사라진다, 양말이, 발을 먹었다

왼쪽 다리를 먹은 바지가
오른쪽 다리를 밀어 넣으니 오른쪽 다리마저
먹어버린다

왼팔을 넣으면 왼팔을, 오른팔을 넣으면
오른팔을 먹는 재킷
씹지도 않고
삼켜버리는 재킷

나는 이제 어깨도 가슴도 없다
나는 이제 한 벌의 옷이다!

거리에 사람을 갖춰 입은
옷들이 둥둥 걸어 다닌다
숫제 개나 고양이를 갖춰 입은 옷도 있다

아침부터 왕성하게 나를 먹어치운 옷은
저녁이면
나를
생산한다

살아있는 한 나는
끊임없이 생산되고, 끊임없이
소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