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재기 전모 / 손세실리아
한동네 사는 글쟁이 몇이 밥 먹기로 약속한 날 하필이면 대형서점의 일부 베스트셀러 순위가 대형 출판사의 사재기로 조작됐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터졌다 저마다 분통터져하는데 우리 중 막내이면서 스테디셀러 시집으로 자리매김한 ㅅ만 별말 없다 한참만에야 비장하게 말문을 터 저... 사실은... 제 시집 일부도... 사재기와... 무관하지 않아요 실토한다 화장품방문판매원인 노모가 주범이란다 시집 출간 직후 어깨 탈골로 접골원 찾는 일이 빈번하기에 짚이는 데가 있어 가방을 뒤졌더니만 제품이 반 시집이 반이더란다 먹지도 입지도 못할 종이때기를 누가 사나 싶은 노파심에 이문 한 푼 안 남는 책장사를 자청해서 무려 일흔일곱 권이나 팔았단다 억장이 무너지고 눈물도 나오지 않더라는
호랑이 어금니 같은 시집을 다시 펼친다 울컥, 가을이 깊다
『시작』 2006년 겨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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