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꽃게 이야기 / 김선태

시인 최주식 2010. 2. 1. 23:12

꽃게 이야기 / 김선태

                                           

 

  흔히 보름 게는 개도 안 먹는다는 속설이 있지요. 왜냐구요? 이놈 들은 주로 보름 물때에 탈피를 하느라 아무 것도 먹지 못하기 때문이 지요. 하여, 겉은 번지르르 해도 속은 텅 비어 있으니 그야말로 무장 공자無腸公子라는 말씀이지요.

 

  허나, 서해 어느 갯마을에는 이 속설을 살짝 뒤집은 재미난 이야기도 전해 내려오지요. 보름달이 뜨면 괜시리 시골 처녀들이 밤마실을 나가듯 야행성 꽃게들도 먹이 활동을 나간다지요. 그런데 달빛이 하도나 밝아 물속까지 훤히 비추면서 꽃게들도 그림자를 드리우니, 아 글쎄 제 그림자인 줄을 모르는 이놈들은 등 뒤의 무슨 시커먼 물체에 화들짝 놀라 삼십육계 게걸음을 친다는 겁니다. 한참을 쫓기다 이젠 안 따라오겠지 하고 돌아보면 따라오고 잠시 바위틈에 숨었다가 나가 도 다시 따라오니 참 그만큼 징상스러운 일이 또 어디 있겠어요? 그렇게 밤새도록 줄행랑을 치다 결국 아무 것도 먹지 못하고 날이 새니 보름 게는 살이 오를 겨를이 없을 뿐더러 있는 살까지 죄다 내려 속빈 강정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어허, 그런데 말입니다. 호랑이 앞에서도 집게발을 쳐들고 대드는 용기를 가진 이놈들이 그깟 제 그림자에 속아 도망을 치다니 참 우습지 않아요? 그러고 보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놈은 다름 아닌 제 그 림자 아니 제 자신이 아니었을까요?


                      『현대시』2008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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