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을 벗는다 / 최규철
머릿속이 헝클어져
질근질근 아플 때는
머리를 감고 빗질을 한다
빗살 사이에서 뽑힌 실낱같은 세월이
잠시 흰 머리카락 끝에 매달렸다가
바람에 날려간다
손톱 발톱을 깎고
머리끝에서 손끝 발끝까지
몸의 구석구석 다듬고 추스른다
평생토록 이렇게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부스러기들은 얼마나 될까
면도를 한다
희끗희끗하고 꺼끌꺼끌한 수염을
깎고 머리를 염색하여
나이든 흔적을 지우는 것은
이 나이를 사는 슬픈 가면극이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속옷까지 갈아 입고 나면
어느새 허물을 벗고 나뭇가지에 올라가
버들피리를 불며 노래하는 매미가 된다
여러 해를 땅 속의 애벌레로 살다가
날개를 달고는 이내 승천하는 매미의 생애를
시집 <빛으로 가는 길> 2008. 시문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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