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을 재는 체중계 / 심인숙
당신이 가고 체중계를 베란다로 옮겨놓았습니다
적막강산이 되자 달이 찾아왔습니다. 맨발로 내려온 달이 체중계를 딛고 섭니다 모서리까지 한가득 올려집니다 체중계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바람을 타고 체중계 속을 달이 미끄러집니다 적막도 함께 밀려납니다 잃어버린 말들이 바람소리가 되어 먼 곳으로부터 오고 있습니다 체중계는 당신을 덜었다 놓았다 눈금 사이를 오락가락 합니다 오래전에 져버린 감나무 잎이 뚝, 떨어집니다 체중계가 일순 가벼워집니다
사각의 모포 한 장, 체크무늬가 일렁입니다
체크무늬는 잠깐 비틀거립니다 달이 먼저 창문을 빠져나갑니다 휠체어를 벗어난 무릎덮개가 허공 위에서 너풀거립니다 불 꺼진 십자가를 휘돌아 빌딩 숲속으로 휘적이며 날아오릅니다 별들은 부르튼 입술로 호위를 합니다
달빛은 부서져 내리고 달무리는 안개처럼 흩뿌려집니다 모포가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웃음소리도 그쳐갑니다 달의 얼굴이 그새 반이나 줄어들었습니다 나는 아픈 눈을 감았다 떴다 합니다
당신의 희디흰 발뒤꿈치만 체중계 위에 남아있습니다
작가 51
<시향> 가을호 / 한국시 펼쳐보기 50선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허물을 벗는다 / 최규철 (0) | 2010.02.02 |
---|---|
자귀나무 그 집 / 손순미 (0) | 2010.02.02 |
붉은 염전 / 김평엽 (0) | 2010.02.02 |
연 / 오세영 (0) | 2010.02.02 |
그림자 연극 / 강영은 (0) | 2010.02.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