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허물을 벗는다 / 최규철

시인 최주식 2010. 2. 2. 22:13

허물을 벗는다 / 최규철

 

머릿속이 헝클어져

질근질근 아플 때는

머리를 감고 빗질을 한다

빗살 사이에서 뽑힌 실낱같은 세월이

잠시 흰 머리카락 끝에 매달렸다가

바람에 날려간다

손톱 발톱을 깎고

머리끝에서 손끝 발끝까지

몸의 구석구석 다듬고 추스른다

평생토록 이렇게 내 몸에서 떨어져나간

부스러기들은 얼마나 될까

면도를 한다

희끗희끗하고 꺼끌꺼끌한 수염을

깎고 머리를 염색하여

나이든 흔적을 지우는 것은

이 나이를 사는 슬픈 가면극이다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 입는다

속옷까지 갈아 입고 나면

어느새 허물을 벗고 나뭇가지에 올라가

버들피리를 불며 노래하는 매미가 된다

여러 해를 땅 속의 애벌레로 살다가

날개를 달고는 이내 승천하는 매미의 생애를

 

시집 <빛으로 가는 길> 2008. 시문학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