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 외 1편 / 윤석산
지리산 자락 산수유
뜨거운 폭염의 여름을 지나며
햇살 속 익고 익고 또 익어 가을이 되면
빨간 눈알 같은 열매를 맺는다
가을 햇살 한 뼘이라도 놓칠세라 멍석에 펼쳐 말리고 말려
산수유가 발긋발긋 말 그대로 가을 햇살이 되면
아낙들은 둘러 앉아 산수유를 깐다.
빨간 열매 안에 웅크린 독이 든 씨앗
일일이 “입”으로 까서 발려내고, 빨간 살집만 다시 넣어놓는다.
입으로 깐 산수유
다른 한쪽으로는 빨간 산수유 열매를 받아내는,
입으로 하는 작업.
마을 아낙들의 구수한 입담 같은 가을 햇살멍석
지리산자락 그들먹이 번져갈 때
빨간 산수유, 침이 가득 고인 입, 그 안에서
쌉쌀한 약이 된다
그래서 허리 부실한 사내들의 오줌줄기
지리산 밑둥만큼
시원스레 키우는, 가을 보약이 된다
똥이 밥이 되던 시절 1 / 윤석산
아주 오래 전 서울 주택가에는 똥을 퍼 나르는 트럭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왔었다. 동네 어귀에는 똥차가 세워졌고 똥지게를 짊어진 사내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똥 퍼요, 똥퍼요. 를 외쳐댔다.
똥이 그들에게는 똥이 아니다. 똥은 입으로 들어가는 밥이었다. 똥이라도 퍼서 날라야 밥이 생기는데. 바짓가랑이에 똥이 묻어도 “똥이 뭐 대수여.” 조금도 개의치 않고 똥과 땀이 범벅이 된 바지춤에 젓가락을 썩썩 문질러 닦고는, 맛있게 퍼먹는 고봉밥. 우리의 그 시절 똥은 그렇게 우리의 밥이 되곤 했었다.
시집 「밥 나이, 잠 나이」2008.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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