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2006 부산일보 신춘문예 - 수필]

시인 최주식 2010. 2. 2. 23:14

[2006 부산일보 신춘문예 - 수필]

 

굳은살 / 김정임

 그는 내 무릎에 발을 올려놓고 잠이 들었다. 남편의 발을 이렇게 자세히 들여다 본 적이 있었던가. 억세게 보이는 발꿈치에는 온통 굳은살이다.

 사람을 대할 때 가장 나중에 보게 되는 것이 발이 아닐까. 눈빛만 보아도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될 때쯤 발은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 그의 낯선 뒷모습을 보듯 가만히 그의 굳은살을 살펴본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단단하게 만들었을까.

 잠시 낮잠에 빠져든 남편,굳은살은 그의 발에만 있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나에게 말하지 못한 어려운 일들이 가슴 한구석에 층층이 굳은살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잠든 그의 얼굴에 자리 잡은 굵은 주름이 지난 세월의 흐름을 말해주고 있다.

 아침이 되면 남편은 정확한 시계처럼 출근을 한다. 가끔 그의 구두를 닦을 때마다 구두 뒤축이 많이 닳아 있는 걸 보게 된다. 신발을 산 지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남편의 신발 뒤축은 한쪽이 더 닳아서 경사지게 보였다. 그는 세상을 평평하게 딛지 못하고 왜 한쪽으로 기울게 걸어 다닌 것일까.

 인생은 아스팔트가 깔린 탄탄대로만 있는 것이 아니듯 때론 자갈길이나 비탈진 길을 만났을 것이다. 그 길을 걷다보니 그의 구두는 고르게 닳지 못하고,때로는 기우뚱거렸을 것 같다. 신발 속의 발인들 마음이 편했을까. 중심을 잡기 위해 발은 내성을 키우듯 단단하고 굳어진 듯하다.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자신의 몸의 일부처럼 생각했던 바이올린 때문에 목 언저리에 굳은살이 박이고 피부색까지 변했다고 한다. 그 굳은살에는 그녀의 바이올린에 대한 정열이 한 층을 이루고 바이올린을 통해 표현하고 싶던 음악이 또 한 층을 이루며 시간과 함께 여물어 갔을 것이다.

 나는 그녀의 굳은살에서 고독의 그림자를 만난다. 혼자서 걸어야 하는 외로운 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가장 아름다운 곳도 굳은살이 있는 목이라는 생각이 든다. 바이올린을 받쳐주는 굳은살의 꽉 찬 느낌 때문에 그녀는 안정적으로 음악에 몰입하게 되는 것 같다. 나무의 옹이 같은 그녀의 굳은살. 나무에 거친 흔적을 남긴 옹이가 때로는 아름다운 무늬가 되는 것처럼 그녀의 굳은살은 음악의 미려한 선율로 남으리라.

 굳은살은 세상을 열심히 살아왔다는 인증서 같은 것이다. 손과 발에 있는 굳은살은 생에 대한 끈질긴 의욕과도 같다. 가끔 손과 발의 모양까지도 바꾸어 놓은 굳은살을 보게 될 때 나는 내 삶의 자세를 다시 한번 가다듬게 된다. 보이지 않는 작은 먼지 알갱이가 어느 날 더께가 되어 쌓여 있는 것처럼,삶에 대한 끝없는 열정을 삭히고 나면 그곳에 굳은살이 생긴다.

 나에게는 어떤 굳은살이 있을까. 그러나 이렇다 할 굳은살은 보이지 않는다. 굳은살을 만들 만큼 무언가에 열중하지도 못했고 주어진 생을 사랑하지도 못한 내 모습이 드러날 뿐이다. 내 몸에 굳은살을 만들기보다는 그동안 남편의 굳은살 안에 웅크리고 있었던 나를 알게 되었다.

 뒷산을 오르는 등산로는 산이라고 하기가 무색할 만큼 길이 다져져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길은 윤이 나는 것처럼 반들거리고 단단해졌다. 그 단단해진 길은 산이 갖고 있는 굳은살일 것이다. 산은 제 속살을 보호하기 위해 굳은살을 만들고 있었다. 그 굳은살 속에 산은 얼마나 많은 것을 품고 있는가. 부드러운 흙과 나무의 뿌리도 넓게 자리잡고 이름 모를 씨앗도 들어있다.

 예전의 나는,굳어지는 것은 사물에 대해 익숙해지고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 고지식함으로 받아들였다. 물결의 흐름이 보이지 않는 강물과 금방이라도 갈라질 것만 같은 굳은 땅,흐린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이 모든 것들이 이런저런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굳은살처럼 여겨졌다. 변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사람들도 그의 일상에 굳은살이 박였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나는 굳은살을 두껍게 만드는 것일수록 그 속은 여리다는 것을 알 것 같다. 딱딱한 게 껍데기를 벗기면 부드러운 게살이 들어있다. 속살이 너무 연약해서 게는 껍데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든다. 바다 물결과의 부대낌에서 살아남기 위한 본능과도 같을 것이다. 남편도 세상이라는 바다를 헤쳐 나가기 위해 굳은살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 했으리라.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남편이 무심코 던진 말에 상처를 받은 적이 있었다. 내 여린 속살에 입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그러나 그 속살은 서서히 굳은살이 되었다. 예전에 내가 아팠던 말들은 이제 아무런 감각도 없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것은 차츰 마음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이다. 그건 중년의 뻔뻔함이나 안이함과는 다르다. 작은 상처나 가는 속울음을 삼켜낼 수 있는 보호막과도 같다. 그 굳은살은 사람과 사람사이를 아프지 않게 한다.

 부부가 서로 편한 것은 상대편의 어디쯤 상처가 있는지 알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쓰다듬고 치유하는 길에 굳은살이 있다.

 

 

[2006 신춘문예 - 수필] 심사평

 


깊은 관조와 상상력 느껴져

 

 수필은 관조와 상상의 뼈로 구축되는 문학임은 익히 아는 상식이다. 한 편의 수필에는 그 수필을 쓰기 위한 작가의 깊은 관조와 상상이 뒤따라야 함은 불문가지다. 응모한 작품을 면밀하게 읽고 검토하는 과정은 일종의 읽기 전쟁이었다. 이런 가운데서 마지막까지 손에서 떠나지 않는 몇 작품이 있었음은 수필의 전도를 위해서도 매우 흐뭇한 일이었다.

 

 '지심도 연가','사랑이 머무는 풍경화','어미의 노래','번지점프를 꿈꾸다','뻐꾸기 소리','굳은살','선'에 머문 선자들의 시선은 두루 따뜻했다. 몇 차례의 읽기와 토의를 거치면서 '어미의 노래'와 '굳은살'을 두고 장고에 들어갔다. 결국 '굳은살'의 손을 들어주기로 했다.

 이 응모자의 나머지 작품 2편이 '굳은살'의 손을 들어주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당선을 축하하며, 그 외 모든 응모자에게도 격려의 말을 전한다.

 

 수필가 김규련·유병근

 

 

당선소감 / 김정임

 


다시 수필의 길 찾아나서

 

 

 고장 난 신호등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길 한쪽에 누워있던 신호등에 초봄의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태양 빛에 세 가지 색을 빛내는 신호등, 그건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반복된 색의 순환을 벗어난 신호등의 표정은 무척 자유로워 보였습니다.

 

 가끔 신호등의 불빛을 떠올립니다. 나에게는 어떤 불빛이 있을까. 수필 쓰기란 그렇게 변변하지 못한 내 삶을 들여다보는 과정이었습니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었다고 할까요. 좋은 수필을 쓰고 싶다는 희망,이제 막연히 품었던 그 희망을 꺼내 쌓인 먼지도 털어 내고 녹이라도 슬었는지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당선의 영광이 수필 쓰기의 행복으로 오래오래 남아있었으면 합니다.

 

 신춘문예에 수필의 자리를 마련해준 부산일보사에 감사드립니다. 항상 곁에서 힘이 되어주는 가족과 저를 아끼는 많은 분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 겨울, 저는 수필의 길을 찾아 다시 출발하려 합니다.

 

◇1964년 경기도 안양 출생. 2003년 '에세이 문학' 추천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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