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신문칼럼)

2006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당선 수필

시인 최주식 2010. 2. 2. 23:13

2006년 대구매일 신춘문예 당선 수필


 

구두를 닦으며

                                                            엄정숙



 남편의 구두를 닦는다. 날마다 닦는 구두지만 오늘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예감에 손끝에 힘이 더해진다. 바닥이 드러나기 시작한 캥거루 구두약을 천에 묻혀 가죽을 문지른다. 사람의 피부에 영양크림을 바른 것처럼 촉촉하고 부드럽다. 리드미컬한 손놀림으로 솔질을 하면 한 쪽으로만 닳아진 구두가 절름절름 춤을 추어 박자를 맞추는 것 같다.
 현관 바닥에 앉아 발을 구두 속에 넣고 천 양쪽을 당기며 광택을 낸다. 무사히 하루의 무게를 잘 견뎌 달라고 부탁이라도 하듯 아침마다 힘껏 구두를 닦는다. 채 몇 시간도 안 되어 뿌연 흙먼지를 뒤집어쓸 구두인데도.

 수협 공판장은 거칠고 살벌하다. 몇 초 동안에 물건의 품질을 판단하고 가격을 걸어 다른 이들과 고도의 신경전을 벌여야 하는 남편의 직업은 건어물 중개인이다. 그래서 그에게서는 언제나 건조한 바다냄새가 난다. 가끔은 해일이나 파도에 밀리는 난파선처럼 숨가쁜 고비도 있지만 바다는 어머니의 젖줄처럼 치유의 길을 열어 주기도 한다. 그런 시간을 함께 했던 구두 역시 홍건히 젖은 돛단배처럼 무겁고 힘들었던지 집으로 돌아오면 옆으로 쓰러져 누워 버리곤 한다. 그대로 두어도 누가 탓할 사람이 없지만 나는 한사코 세상 쪽으로 구두를 일으켜 세워 놓는다. 그런 나의 재빠른 행동이 어쩌면 남편을 조류가 급한 바다 한 가운데로 내몰려는 몰인정한 처사 같기도 해서 주춤해질 때가 더러 있다.

 내 구두는 그럴 듯하게 닦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구두를 신고 외출을 해야 할 때는 걸레로 슬쩍 문지르고 나가면 그만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두 사람의 구두를 닦아 보았다. 오빠의 구두가 그 중 하나이다. R. O. T. C.장교가 된 오빠의 군화를 나는 반짝반짝 윤이 나게 닦아 가지런히 댓돌 위에 앉혀 놓곤 했다. 그리고 늠름한 사회인으로 잠시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었을 때는 더더욱 신바람을 내며 아침마다 구두를 닦아 오빠의 출근길을 밝혀 놓았다. 앞날이 너무 눈부셨던 걸까.
 흠도 결도 없이 투명한 가을날, 스물 아홉 살의 오빠는 위암이라는 병명으로 이승을 떠났다. 홀몸으로 여섯 남매를 키워온 어머니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 놓은 채. 장례를 치르고 난 후에도 오빠의 구두는 현관 한 구석에 물음표처럼 놓여 있었다. 그 물음표 같은 구두를 버리지 못한 것은 오빠의 자취를 지워버리는 일이 두려웠던 때문일까. 아니면 오빠의 죽음을 묵살해버리고 싶은 우리의 간절한 마음 때문이었을까. 정말이지 오빠가 홀연히 문을 열고 들어설 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오빠의 구두를 닦아 주고 싶었다. 구두약 대신 눈물바람으로 닦아 놓아도 구두는 금방 신었다 벗어 놓은 것처럼 생생했다. 반짝이는 구두 속에서 오빠의 체온과 웃음과 목소리까지 튀어나오기라도 한 것처럼 식구들은 장례 때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
 남편의 구두를 닦을 때면 가끔 그날의 시리디시린 우리 식구들의 모습이 스쳐가곤 한다. 내 영혼의 한 곳에 깊이 각인되어 몇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한 한 장의 흑백사진으로 되살아난다.

 닦고 광택을 내야할 것이 어디 구두뿐이랴. 몸과 마음은 물론 학문과 교양까지도 매일 닦지 않으면 때가 끼고 먼지가 앉게 마련이다. 하루하루 거울을 닦듯이 먼지를 털고 닦아야 하는데도 제대로 닦아 놓은 것이 하나도 없어 쓸쓸함만 더해 간다. 오빠의 구두나 남편의 구두를 닦는 것처럼 나 자신의 길을 열심히 닦았더라면 그들이 비록 먼지 묻은 구두를 신고라도 하늘을 오를 듯이 기뻐하며 나를 자랑스러워했을지도 모른다. 구두는 구두닦이에게 맡기고 네 자신을 닦으라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두코에 입김을 불어가며 광택을 내다가도 그런 생각이 들면 나 자신이 참 한심해 보인다. 구두 닦는 손에 문득 힘이 빠지는 순간이다.

 아무래도 나의 전생은 구두닦이 소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저씨, 구두를 닦게 해 주세요.”
폴란드의 피아니스니트이자 정치가였던 파데레프스키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보스턴역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그에게 한 구두닦이 소년이 다가왔다. 꾸벅 허리를 굽힌 그 소년의 얼굴에는 구두약이 잔뜩 묻어 있었다.
“꼬마야, 내 구두는 닦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네 얼굴은 좀 닦아야겠다. 얼굴을 닦고 오면 그 값으로 은화 한 닢을 줄 테니.”
 순간순간 내 마음의 거울을 들여다보게 하는 따뜻한 대화의 한 토막이다.

 가을은 생각보다 빨리 깊어간다. 하룻밤 가랑비에도 노란 은행잎이 거리에 수북하다. 서로 사랑하며 살아갈 날들도 하루씩 떨어져간다. 하산을 서두르는 고운 단풍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들뜬 모습으로 산으로 간다. 남편의 가을은 남도의 푸르딩딩한 바닷가에 불경기의 수심처럼 머물러 있다. 나는 남편의 옷과 신발에 묻어오는 마른 멸치 비린내를 가을바다의 향기로 여기며 신발보다 더 낮게 엎드려 그의 구두를 닦는다. 하루치의 노역을 싣고 타박타박 사막을 가야 하는 낙타의 등을 쓰다듬듯 가슴 속의 얼룩과 주름살을 펴듯 정성을 다해 구두를 닦는다. 한 바탕의 신바람까지 곁들여 닦은 구두 한 켤레가 햇살처럼 집 안팎을 환하게 밝혀 준다.
 오빠의 구두가 내 기억 속에 아직 어두움으로 남아 있다면, 오늘 아침 내가 닦아 놓은 남편의 구두 한 켤레는 새로운 날을 시작하는 삶의 밝은 빛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선소감]


 이 겨울에 씨앗 하나가 온실이 필요했나 보다. 어떻게 미로 같은 사람의 몸 속에서 제일 따뜻한 장소를 찾아냈을까. 그런데 미안하게도 가슴 한 쪽에 몰래 쭈그리고 앉은 씨앗을 꽃도 피우기 전에 도려내야만 했다. 꽃을 피우고 싶은 것이 어디 한 두 가지뿐이겠는가.
 수술을 받기 하루 전 입원하러 가던 날 원고를 보내려고 우체국에 갔다. 반가운 소식을 듣기 위해 그리움을 묶어 보내는 사람들 틈에서 내 우편물은 부끄러움에 낯을 붉히고 있었다. "누군가가 읽어 줄 꺼야. 민들레홀씨처럼 가볍게 날아만 가라"며 격려의 눈짓을 보냈다.
겨울하늘이 어찌나 청명하던지 마음이 풍선처럼 팽팽해져 빠른 우편물보다 내가 먼저 그곳에 당도할 것 같았다. 해맑은 얼굴의 우체국 여직원에게 건강보험이라도 하나 들어주고 싶었지만 입원시간이 촉박했다.
 늘 가까이 있어도 낯설기만 한 생명과 무생물이 너무 많다. 그들을 불러들여 두레상을 펴고 사랑을 나누면 그것이 내 수필의 꽃밭이 될 수도 있겠다 싶다. 어쩌면 세상을 그럭저럭 살았다는 죄명에서도 간신히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다.
나를 사랑하고 아프게 했던 것들은 씨앗 같은 언어들을 키우는 자양분으로 삼아야겠다. 그러면 아무리 추워도 얼지 않는 꽃밭을 가꿀 수 있을 테니까. 용기와 희망을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수필문학의 위상을 새롭게 세워주신 매일신문사의 배려는 아직 감동으로 남아 있다.
 항상 내 글의 첫 번째 독자와 평자가 되어 주는 남편에게 수필 ‘구두를 닦으며’로 고마운 마음을 대신한다. 내게 모범 독본이 되어주었던 정호경·임병식 선생님과 배순아 선생님께도 이 기회를 빌어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가장 기뻐해 주실 것 같은 어머니가 저승길만 바라보며 누워 계셔서 기쁨 가운데도 슬픔이 따른다.

 


[심사평]


 첫 농사의 결실이 정말 풍성했다. 응모한 작품은 무려 470여 편이었다. 지역 또한 광범했다. 서울.부산.광주.전주를 비롯한 대도시와 중소도시는 물론 제주도.강원도 멀리 캐나다의 교민들도 땀 흘려 가꾼 영근 열매들을 들고 참여했다.
 수필부문은 올해가 첫 해여서 양과 질이 어떨지 근심했으나 그것은 기우였다. 양은 넘쳐났고 질도 덩달아 높았다. ‘덤불 짙은 데서 도깨비가 나온다’는 옛말이 하나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수필 인구의 양적 팽창에 따른 활화산 같은 열정을 매일신문이 신춘문예를 통해 받아줌으로써 이렇게 빛나는 결실이 맺어진 것이다.
 첫 해의 당선작으로 전남 여수에 살고 있는 엄정숙씨의 ‘구두를 닦으며’를 뽑았다. 두 심사위원이 의견 일치를 보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구두를 닦으며’의 수준은 타 작품에 비해 매우 월등했다.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여성으로선 결코 평범하지 않는 소재를 화두처럼 거머쥐고 오빠라는 과거와 남편이란 현실 속을 내왕하며 주술처럼 풀어내는 글 솜씨는 비범했다.
‘글이 사람’이란 말도 있고 ‘글 이전에 사람이 되라’는 말도있다. 아침마다 바닷가 어판장으로 출근하는 남편의 구두코에 뜨거운 입김을 불어가며 구두를 닦는 필자와 남편의 아침밥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는 요즘 새댁들을 비교해 보면 이 글이 왜 고귀한 지를 금방 알게 된다. 아름다운 마음 위에 글이 받쳐 주었으니 금상첨화 격이다.
 본심에는 모두 7편이 올라왔다. 김은영씨의 ‘꽃살문’, 신성애씨의 ‘삭발’, 김경순씨의 ‘달팽이 소리지르다’, 윤남석씨의 ‘배추와 매미’, 권은숙씨의 ‘천년을 거슬러 올라’, 김미경씨의 ‘아버지의 호박밭’, 등이다.
7편을 놓고 씨름 끝에 ‘구두를 닦으며’와 ‘꽃살문’이 최종심에 올라 막판 힘겨루기를 했다. 남편과 연인 사이에서 고뇌하고 갈등하는 여인처럼 어느 한편은 머무르게 하고 나머지 하나를 떠나보내야 한다는 게 몹시 가슴 아팠다.
 소재가 특이하고 구성이 탄탄하면서 반전이란 기교를 제대로 부린 ‘꽃살문’은 아마추어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수작이었다. 그렇지만 남편 신발을 닦을 때 구두약이 얼굴에 잔뜩 묻어 있는 구두닦이 소녀를 꽃살문을 밀치고 법당 안으로 들여보내 은화 한 닢을 먼저 받게 했다. 신인이 품고 있는 심성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머지 6편도 정말 좋은 작품이었다. 응모한 모든 분들에게 항상 문운이 함께 하길 빈다.

정혜옥(수필가) 구활(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