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레방아 / 박은우
아마도 내 나이 너댓 살적, 우리 집은 전라북도 장수군 계북면 남덕유산 아래 작은 물레방앗간이었다. 어머니는 날마다 돌확 옆에 쪼그려 앉아 쿵덕쿵덕 내려찧는 괴물 같은 방아머리에 머리가 부딪칠 것 같은 자세로 연신 젖은 보리를 손으로 휘젓고 계셨다.
박자가 조금만 빗나가도 어머니의 손이 부서지거나 머리가 깨져 죽을 것 같아 어머니 등에 붙어 서서 겁에 질려 울곤 했다. 어머니가 달래다가 소리치면 나는 밖으로 나와 한참을 울다가 커다란 나무 괴물, 물레 위 둑으로 올라갔다. 물막이 판자를 작대기로 들춰 물이 새게 하여 물레방아가 돌아가지 못하게 심술을 부리곤 하였다. 그러면 이내 어머니께서 올라와 야단을 치거나 매를 들곤 했지만 그래도 어머니가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자꾸 그랬다. 야단치는 어머니가 너무나 야속했다.
무서운 아버지를 피해 유일한 믿음인 어머니께서 저러다 죽을 거라는 불길한 생각이 막연하게 확신으로 굳어지면서 나는 물레방아를 제일 무서워했고 증오했다. 어머니가 방아를 찧는 동안 나는 냇가에 앉아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다가 지쳐 잠이 들지만 개미들이 입속으로 들어와 혀를 무는 바람에 깨어나면 다시 들리는 무서운 그 소리, 철철철 삐익 쿵.... 나는 어쩔 수 없는 절망에 다시 울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서럽다. 어머니는 그렇게 쪼그려앉아서 하루 종일 돌확을 휘저으며 껍질이 어느 정도 벗겨지면 천장에서 늘어진 동아줄로 방아머리를 잡아매고 키질을 하신다. 그러면 빈 물레는 빠르게 돌아가면서 요란한 소리로 허름한 판잣집을 흔들어대는데 나는 집이 무너질 것 같아서 무섭다. 그래서 또 운다. 어머니는 태연하게 이마에 흐르는 땀방울을 머릿수건으로 닦으시며 일어나 개울가 텃밭에서 여물지도 않은 꼬부라진 물외 하나를 따주신다. 얼마나 맛있었는지 그 향기는 어머니 냄새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께서 잠시 쉬는 사이 울음을 그치고 엄마냄새를 맡으며 엄마품에 파고들면 비녀가 반쯤 빠져 머리가 얼굴 위로 흘러내린 모습이 무서웠다.
그 당시 사람이 죽으면 엄마들은 흰 옷을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일을 하시며 시간 맞춰 우는 걸 옆집에서 봤었다. 그런 걸 본 후 나는 어머니께서 머리를 빗기 위해 풀어헤치기만 해도 무서웠다. 그래서 내가 일어나 비녀를 바로 찔러보지만 한번 흐트러진 쪽은 더 헝클어질 뿐 비녀 꽂을 곳을 찾을 수가 없었고 결국 어머니께서는 새로 머리를 풀어서 다시 쪽을 지으시곤 하셨다. 쪽을 지으시고 먼 산을 바라보시던 어머니는 종종 나의 존재를 잊으신 듯 한숨어린 슬픈 표정 위로 이슬 같은 눈물이 맺히곤 하였다. 나는 영문을 모르지만 어머니가 그러면 절로 서러워 치마폭에 얼굴을 묻고 소리 없이 울곤 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어머니께서는 열일곱 살에 만주에서 아버지를 만나 결혼 하셨고 해방이 되자 아버지를 따라 환국을 하셨단다.
친정식구는 한명도 못 나오고 오직 어머니만 나왔으니 친정 없는 고아 신세였던 것이다. 그래서 종종 소식 조차 알 수 없는 부모 형제 생각에 눈물을 짓곤 하셨던 것이다.
여름철 장마가 시작되면 무서운게 더 늘어난다. 성난 물소리 때문에 말소리도 들리지 않고 집이 흔들리는가 싶으면 흙탕물이 방 앞까지 넘실거리거나 아예 방까지 물에 잠기는게 예사, 그럴 때면 서둘러 살림살이를 이웃집으로 나르시던 물에 젖은 어머니, 치마가 젖고 저고리가 다 젖어서 젖가슴이 다 드러난 엄마, 난 철없어 그저 유난히 커다란 엄마 젖이 이쁘기만 했다. 엄마들 중에서 제일 이쁜 우리 엄마, 가슴도 제일 큰 우리 엄마, 그런데 나중에 안 일이지만 어머니는 큰 가슴 때문에 늘 고민이었다고 한다. 한복이란 게 가슴을 동여매야 하는데 가슴이 너무 크니 옷맵시도 안 나고 무척 창피했단다.
물레방아 특성상 물가에 살다 보니 물난리 아니면 뱀 소동이 자주 났었다, 자다가 천장에서 구렁이가 떨어지면 어머니는 기겁을 하고 나를 홑이불로 감싸 안고서 피신하던 기억이 난다, 어머니는 얼마나 그런 집이 싫었을까?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를 설득해서 물레방아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이사를 했던 것이란다. 괴물 같은 물레방아와 흙탕물과 뱀으로 각인 된 물레방앗간 기억은 내 동심을 갉아먹는 무서움이었다. 자다가도 물레방아 돌아가는 소리만 나면 내내 울기만 했던 그 시절, 20대 후반의 젊은 어머니는 얼마나 고단하고 가슴이 아팠을까? 아버지가 나무를 팔러 먼 곳으로 가시어 돌아오지 못하는 날 밤이면 어머니는 나를 숨이 막히게 끌어안고 있었는데 이 역시 방앗간에 쥐가 너무 많아 천장이고 부엌이고 쥐들이 설치는 바람에 무서워서 그랬다는 얘기를 커서 들었을 때 엄마의 인생이 너무나 가여웠다.
그 후 나는 디딜방아도 싫어했고 심지어 절구통마저 싫어해서 아무도 없으면 발로 차서 넘어뜨려 버리곤 했다. 또한 뱀도 증오에 가깝게 싫어해서 길을 가다가도 뱀을보면 돌로 쳐 죽이거나 막대기로 쳐서 죽여 없애야 속이 시원했다. 그 모든 게 어머니의 원수처럼 보여서 지금도 생각만 하면 으스스 오한이 느껴질 정도로 싫어진다.
그런 삶을 살아오신 어머니는 이제 아들이 찾아주기만 기다리는 늙은 아이가 되어 오늘도 빠르게 돌아가는 빈 물레처럼 야속한 하루를 넘기시며 홀로 자리에 누우시겠지. 불효자식을 원망이나 하시지요. 어머니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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