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7번국도 외 1편 / 김영식

시인 최주식 2010. 2. 4. 21:51

7번국도 외 1편 / 김영식

 


오늘도
늙은 마술사는 두꺼운 외투 안쪽에서
심심풀이처럼 소도구들을 꺼내놓는다

 

탁자처럼 네 발로 허공을 쳐들고 있는 오소리를
갑자기 커진 동공에 그렁그렁 어린 새끼들 울음소릴 담고 있는 들고양이를
수의 같은 죽지로 제 주검을 덮고 있는 까투리를

 

가끔씩 물웅덩일 꺼내
카푸치노처럼 슬쩍 구름을 섞기도 하지만
그건 고도의 계산된 오류

 

등 굽은 억새의 흰 머리칼을 빗질하던 바람만이
어리둥절한 變死의 목덜미를 쓸어주고 갈 뿐,
맹목의 질주들이 분주하게 왕래하는
이 노천상가엔 개미새끼조차 조문 오지 않는다

 

어디에 묻힐까 아스콘 금 사이를 두리번거리다
지나가는 자동차바퀴에 재빨리 엉겨 붙는
붉은 비명 몇 개

 

모른다
시야가 단절된 저 산모룽일 돌다 갑자기
장의사 같은 마술사의 길고 검은 손이 불쑥
자, 죽은 네 얼굴이야! 흔들며 껄껄거릴지도

 

열대야 / 김영식

 

새벽 세시 고양이들이 울었다
처음 그것은 잠투정하는 아이처럼 울었다
그러다 데모하는 시위대처럼 울었다 나중에는
시립오케스트라처럼 울었다 그중 유독 큰소리로 우는 고양이가
무리들의 울음을 지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녀석이 테너로 울면 다른 녀석들도 테너로
녀석이 하이소프라노로 울면 다른 녀석들도 하이소프라노로 울었다
마트로쉬까가 품속에서 끊임없이 인형을 꺼내듯
울음주머니가 품속에서 끊임없이 울음을 퍼냈다
울음은 골목과 아파트를 쥐고 흔들었다
장마 끝난 뒤의 습한 베란다를 넘어
응접실을 넘어 안방을 넘어 울음은 해일처럼 밀려왔다 
저 놈의 고양이! 저 놈의 고양이!
누군가 고양이들에게 헌 신발짝 같은 걸 던졌지만
그럴수록 녀석들은 더 악을 쓰며 울었다
발톱을 세우며 푸른 적의를 내뿜으며 울었다
어둠을 갈갈이 찢어발기며 울었다 울다가 목이 쉬면
다시 목을 가다듬어 울었다
울음은 사람들의 목구멍을 틀어막으며 울었다
이참에 온 동네를 질식시키고 말겠다는 듯 
울음의 늪에 빠진 사람들의 어깨를 찍어 누르며 울었다  
벌써 열흘째 계속이다 이놈의 고양이!

 
<현대시학> 2008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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