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단편 소설
2005년 불교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 실향 / 이 림
실향 / 이 림
오후 4시의 도서관은 쉰을 넘기 시작한 사람처럼 갑자기 맥이 빠진다. 시간이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처럼 축축 늘어진다. 자료실 창문을 열고 읍내 거리와 일별한다. 남자 셋이서 건너편 횟집 간판을 뜯어내고 있다. 간판은 간간이 뜯겨지고 새로 바뀌어도 그 뒤에 가려진 건물의 지붕은 발겨놓은 짐승의 내장처럼 늘 추레하다.
변하지 않는 것은 지붕만이 아니다. 강이에게 Y읍이라는 공간은 팔 년이란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여전히 무료하다. 추레한 지붕 밑 골목 어딘가에서 옆구리에 책을 낀 채 걸어오는 남자를 발견한다. 남자는 1층현관 앞에서 서성거리는 늙은 관장을 지나쳐 이곳 자료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올 것이다.
“칙-칙”
대리석 바닥에 운동화 빨판 밀리는 소리가 신경에 거슬린다. 강이는 손에 들고 있던 식은 커피를 단숨에 들이켜고 좁은 대출대에 가서 앉는다. 대출대 위에는 반납된 책들이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다. 익숙한 손놀림이 한 권씩 책을 들어 검색기로 바코드를 찍는다. 자료실에서 함께 근무하는 김 주임은 공익근무요원 두 명과 이동도서관버스를 끌고 출장을 나갔다.
이동도서관버스는 일주일에 세 번, 책을 가득 싣고 도서관이 상주해 있는 읍과 멀리 떨어진 면소재지를 찾아 떠난다. 누군가의 손길이 닿아서 호명되기 전까지는 있어도 존재하지 않는 잉여물. 선택되지 못하고 남은 장서들이 흐르지 못해서 죽어 있는 사해(死海)처럼 고요하다. 부패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세상을 찾아 나서는 책들. 사해(死海)를 건너는 사공처럼 혼신의 힘을 다해 노를 저었지만 강이의 삶은 대출되지 못한 책처럼 남루하다.
남자가 자료실 문을 열자 동물의 페로몬인양 짙은 무스크향이 잉크방울처럼 빠르게 확산된다. 억지로 마신 커피가 울컥하고 게워져 나올 것 같다. 남자는 반납할 책을 말없이 반출대에 내려놓고 새책을 고르기 위해 서고로 들어간다. 남자가 가져온 책에 검색기를 갖다 된다. 잔향이 남자를 따라 서고 안으로 몰려간다. 50여평 규모의 서고에는 20여만 권의 장서가 내용별로 분류가 되어있다.
그리고 매달 수십 권의 신간들이 새롭게 들어온다. 남자가 골라온 책은 현명한 부모가 되는 법이라든지, 여가시간 100% 즐기기와 같은 내용의 책일 것이다. 남자는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 이 시간쯤이면 도서관을 순례하듯 와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고 정확히 두 권의 책을 반납하고 두 권의 책을 다시 대출해 간다.
3일 만에 두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 내는 독서력이 있는지 어떤지는 몰라도, 남자가 대출실을 빠져나가고 정확히 오 분이 지나면 강이의 핸드폰 벨이 울린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리고 이편에서 장님처럼 여보세요를 세 번쯤 보내고 나면 전화가 뚝 끊긴다. 강이는 그 전화의 발신자가 남자라는 것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오늘도 남자가 자료실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 일층현관을 돌아나 설 찰라, 유행이 지난 듯한 클래식 음조의 핸드폰 벨이 울린다.
강이는 벨 소리가 여러 번 울리도록 느리게 폴더를 열고, 잠수를 하다 뭍에 나온 사람처럼 “여보세요.” 하고 지친 목소리를 털어낸다. 무음으로 응대할 거라는 짐작과는 다르게 챙하고 깨질듯한 젊은 여자의 목소리가 탁구공처럼 가볍게 굴러 나온다.
“여보세요”
여자의 주위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규칙 없이 질러대는 소리가 와글와글 굴러다닌다. 여자가 전화 저편에 대고 주문같이 몇 마디를 던지자 찬물을 끼얹은 듯 주위가 일순 조용해 진다. 여자는 큼큼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말을 건네기 시작한다.
“저, 서민아 고모님 되시죠.”
목소리의 주인은 다름 아닌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햇님반 담임교사다. 지난 여름끝머리, 유치원에 아이를 새로 등원시키기 위해 갔을 때, 아이를 담당하게 될 교사라고 인사를 하던 20대 중반의 여자. 스트레이트 퍼머넌트기가 있는 머리를 깡뚱 묶고, 기다란 손톱에 자잘한 꽃무늬가 가득 그려져 있었다. 손톱에 그려진 노란색 꽃무늬처럼 구김살 없이 발랄해 보이던 젊음. 강이는 자신이 너무 일찍 조루해진 느낌이 들었다. 그 여자는 아이에 대해 상의할 것이 있다고 서두를 꺼내 놓고 주저주저 말을 잇기 힘들어했다.
도대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서민아라는 이름을 듣는 순간부터 강이의 머릿속은 서너 개의 쇠구슬이 제멋대로 굴러다니듯 무겁게 뒤엉킨다. 여선생은 민아가 지나칠 정도로 음식에 집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교실에 다 같이 모여서 블록 쌓기를 하거나, 일렬로 서서 율동을 배울 때에 자주자주 민아가 보이지 않았다고 했다. 처음에는 화장실 갔겠거니 하고 지나쳤는데, 그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니까 민아의 행동에 예의주시를 하게 됐다고 한다. 한 번은 민아가 사라져서 뒤를 따라가 보았더니, 아이가 주방으로 몰래 들어가서는 점심때 원생들에게 급식을 하고 남은 음식들을 꺼내 허겁지겁 먹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강이는 여선생이 말하고 있는 동안 버릇처럼 엄지손가락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여선생은 말문이 트이자 책을 읽어 내리듯 빠르게 제 할 말을 내뱉었다. 열 손가락 손톱이 모두 불편할 정도로 댕강하게 잘려 있지만 유독 왼쪽 엄지손톱 끝은 나달거리고 손톱 밑은 들떠서 피가 내비칠 정도로 위태로워 보인다.
퇴근을 하고 읍내와는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집 마당에 들어선다. 기다렸다는 듯이 끕끕하고 퀴퀴한 냄새가 확 달려든다. 나무 위까지 올라가서 갈무리할 손이 없어 높은 가지 끝에서 뭉크러진 홍시들이 땅에 떨어져 소멸해 가는 냄새일까. 아니면 지은 지 반백 년이 넘었다는 흙집이 통째로 허공으로 육탈해 가는 중일까.
차고 음습한 폐 동굴 속에 젖갈붙이나 홍어를 묻어둔 채 곰 삭이고 있는 냄새. 아무튼,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냄새가 이 집에서는 먼지처럼 부유한다. ㄱ자를 왼쪽으로 뒤집어 놓은 구조로 생긴 집을 알음알이로 소개 받고 처음 왔을 때, 담장 밑 감나무에는 청 푸른 감이 주렴처럼 빽빽했고, 작은 꽃밭에는 연분홍 수국이 탐스럽게 피어 있었다.
문제는 냄새였다. 코를 싸쥐고 새로 들게 될 방을 살펴봐야 했다. 왼편으로 엎어진 ㄱ역자 머리 부분에 해당하는 안방에는 주인노인이 혼자서 거쳐 하는 곳이고, 새를 내놓은 곳은 ㄱ역자의 몸통부분에 해당하는 곳이었다. 새를 내놓기 위해 수리를 해 놓아서인지 보일러 시설과 입식 시설이 갖춰진 집의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입식부엌과 보일러는 새 놓는 곳에만 시설이 되어 있고, 노인이 살고 있는 안방 쪽은 아직까지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재래식 그대로였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을 때까지만 해도 냄새는 살면서 차차 익숙해 질 것이라고 위안을 했었다. 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은 아이와 강이가 사는 방안은 물론이고, 강이가 끌고 다니는 소형승용차 안과 강이의 몸에서도 문득문득 곰삭는 퀴퀴한 냄새가 따라다녔다.
냄새만 뺀다면 강이의 생을 은신 시켜 줄 장소로 이 집만큼 적합한 곳도 없을 것 같았다. 아이를 데려오면서 맨 먼저 서둘렀던 것이 이사였다. 걸어서 출퇴근하기에도 가깝고, 마트를 가거나 음식을 배달시켜 먹기에도 편리했던 읍내의 작은 전세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결정한 것은 아이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아이와 함께 숨어 지낼만한 곳이 필요해진 것이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처녀가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는 소문은 좁은 읍내 바닥에 불길처럼 빠르게 번져나갈 것이다.
겉으로는 강이의 처지를 이해하는듯하면서도 속으로 미심쩍은 눈으로 그들의 구미에 당기는 사연을 만들어 껌처럼 씹고 다닐 것이 불을 보듯 뻔했다. 타인의 행복보다는 불행에 더욱 호의적인 사람들.
요즈음은 도시와 시골 생활의 격차가 줄어들고, 그러한 만큼 타인과의 유대도 건조해져 가는 시대라지만 시골은 아직도 관심과 소문이 무성한 곳이다. 일개 군(郡)의 관청들이 밀집되어 있고 밤낮으로 불빛이 휘황한 상가들이 조성된 거리가 있다 해도 이곳은 아직 폐쇄성이 농후한 소읍이다. 이사를 온 마을은 읍내와 외떨어지긴 했어도 생활이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우선 차가 있어서 활동하기가 자유롭고, 무엇보다 낮 동안에 아이를 맞길 수 있는 사설유치원이 있어서 다행이다.
읍내보다 집값이 훨씬 싸서 방을 계약하고 남은 돈으로 중고나마 승용차도 마련했다. 또각또각 강이의 구둣굽 소리가 마당을 가로질러 불켜진 안방 문에 당도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두 개의 그림자가 ‘井’자무늬 창호 문에 와락 달라붙는다. 정확히 말하면 문고리 높이만큼 한 자리에 붙어 있는, 손바닥만한 유리조각으로 방 밖의 동정을 살펴본다는 말이 맞다. 두 개의 실루엣이 담긴 창호지문 한 짝이 오래 걸어 놓은 액자처럼 익숙하다. 액자 속에서 작은 그림자 하나가 쏜살같이 튀어나온다.
아이다. 예의 아이의 손에는 넓적한 산자조각이 쥐어져 있다. 오늘도 노인은 절뚝절뚝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절에 다녀왔을 것이다. 관절염을 앓는 다리를 주무르며, 늙으면 제일 먼저 돌아앉는 것이 육신이라고 노인은 텅 빈 눈으로 말했었다. 젊은 애첩처럼 애지중지하며 집착해도 나이가 들면 간사하게 배신을 하는 것이 사람 몸이다.
노인이 절에 다녀오는 날은 아이가 떡이며 과일, 유밀과 나부랭이로 군입정질을 실컷 하는 날이다. 사 단짜리 비닐서랍장에는 아이의 물건이 두 칸도 채워져 있지 않다. 강이가 데려올 당시 챙겨온 여름옷 몇 벌과 지금 입고 있는 계절 옷이 전부다. 잠든 아이의 손에는 물엿이 녹은 산자 부스러기가 악착같이 쥐어져 있다.
본능적인 생의 집착. 강이는 커다란 풍뎅이 한 마리가 방바닥에 엎드려 있는 것 같이 생긴 아이의 유치원 가방을 집어든다. 두툼하니 묵신 한 게 내용물이 빵빵하게 차있다.
가방을 열자 동물이 그려진 얇은 출석카드가 보이고 대여섯 개의 초코파이가 우르르 쏟아진다. 순간, 반사적인 신경이 가방을 허공 속으로 내던져 버린다. 그 틈에 쏟아지지 않고 가방 바닥에 남아있던 유산균 요구르트 하나가 “틱”하고 벽에 날아가 맞는다. 귀퉁이가 깨진 채 뎅구르르 방다닥을 구르는 플라스틱병을 따라 미색의 액체가 함께 굴러간다.
아이는 산이 오빠가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유일한 흔적이자 강이게는 단 하나 남은 핏줄이다. 일곱 살 때 집 앞 철길에서 생긴 사고로 한날한시 한꺼번에 부모님을 잃어버리고, 강이와 산이만 두톨박이 밤송이처럼 남았다.
운명을 예감했던지 부모님은 아들과 딸에게 산과 강이라는 이름을 지어서 불렀고, 산과 강은 늘 함께 있어야 아름다운 경치가 된다고 말하곤 했었다. 고작 해야 네 살이 더 많던 산이는 열한 살 때부터 강을 에워싸는 산이 되어야 했다. 강이에게 산이 오빠는 꼭 껴안은 밤톨이 짙은 밤색으로 단단하게 여물 때까지 감싸고 보호해 주는 밤송이가시였다.
보육시설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산이는 플라스틱 사출공장에 취직을 했다. 에어컨 부속품을 만드는 곳이었다. 어떤 날은 하루종일 먼지를 걸러내는 필터만 찍었고, 어떤 날은 제 키만 한 몸통과 하루종일 씨름할 때도 있었다. 화학물질이 녹아서 에어컨 부속이 되는 고열의 금형 틀 옆에서 땀을 피처럼 쏟아야 했던 산이.
그러나 정작 본인은 에어컨 한 대 살 수 없는 형편이었다. 그렇게 해서 모은 산이의 피로 강이는 대학까지 졸업할 수 있었다. 그런 산이 오빠에게 여자가 생겼다. 여자는 몸매가 얄상하고 두툼한 입술에 웃을 때마다 살짝살짝 볼우물이 들어갔다.
늘기름때에 절어 있는 산이 오빠에 비하면 너무나 하얗고 고운 피를 가진 사람이라서 강이는 늘 불안 했다. 둘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그런대로 시간이 흐르자 강이도 차차 마음을 놓게 되었다.
그런데 봄바람이 기어이 사단을 내고야 말았다. 야간작업에 지친 산이 오빠를 채근하다가 혼자서 꽃구경을 나간 여자가 상춘객하고 눈이 맞아 버린 것이다. 여자는 꽃이 질 무렵 끝내 새 애인과 야반도주를 해버렸다. 헛것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가 버린 사람. 산이 오빠는 아이를 데리고 여자를 찾아서 전국을 헤매다녔다.
매일 밤마다 불면에 시달리다 새벽녘에야 겨운 잠든 강이에게 느닷없이 경찰서에서 한 통의 전화가 왔다. 산이 오빠의 신원을 확인해 달라는 것이다. 강이가 다급하게 병원으로 갔을 때 산이 오빠는 이미 영안실 차가운 냉동고에 푸르뎅뎅한 주검으로 남아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 여자를 찾아 헤매다가 새벽녘에 뺑소니를 당한 거였다. 모든 게 미혹같은 그 여자 때문이었다. 죽은 산이 오빠보다 살아남은 아이가 더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강이는 제 엄마를 닮아서 볼우물이 패고, 살결이 뽀얀 아이가 미웠다. 자료실 문을 잠가 놓고 김주임과 점심으로 수제비를 먹고 돌아와 보니, 노인이 자료실 문밖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노인은 강이를 보자 정색을 하고 반가워한다. 일부러 강이를 만나기 위해 한 시간 반마다 있는 버스를 기다려서 타고 왔다는 노인. 강이는 돌발적인 노인의 방문이 거북스러웠다. 칩칩한 집안이 아니라 대낮에도 훤하게 켜진 형광등 아래서 보는 노인의 모습은 생소하리 만치 낯설다.
한 손에 율무차를, 한 손에 커피를 들고 휴게실로 향하는 강이의 뒤를 “똑, 똑, 똑” 지팡이 소리와 ㄱ역자 집을 휘감고 있던 익숙한 소멸의 냄새가 따랐다. 군데군데 검숭한 검버섯이 피고, 자글한 주름과 관절염으로 부자유스러운 손이 종이 잔을 집어든다. 노인의 손끝에서 수전증처럼 미세하게 떨리는 커피잔. 회사까지 찾아와서 나눠야 할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노인과 긴밀한 사이였던가. 강이는 초조한 마음으로 노인의 기색을 살폈다.
“색시, 조카를 나한테 주지 않을 텐가. 색시는 앞으로 시집도 가야할 텐데 말이야.”
앞도 뒤도 없이 돌연하게 날아온 말에 하마터면 강이는 커피를 쏟을 뻔했다.
“할머니에게 아이를 주다니요?”
“혹처럼 딸린 아이만 없다면, 색시도 훨가분 해질 것 아니겠는가. 자고로 여자는 시집가서 제 자식 낳아 키우고 사는 것이 젤 행복한 것이네.”
흡사 시집 못 간 딸을 잡도리하려는 노모의 말투였다. 강이는 자신의 생에 끼어드는 노골적인 간섭이 불쾌했다. 노인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아는 절에 부모와 인연이 약해서 일찍 단절이 된 아이들을 데려다 키우는 비구니 스님이 있다는 것이다. 그곳에다 아이를 맡기자는 것이었다. 노인의 말이 먹잇감을 추적하는 맹수처럼 집요하게 이어졌다.
“날 때부터 박복하게 태어난 아이가 일찌감치 부처님 손에서 큰다면 그것도 복이 아닌가.”
나이가 들면 타인의 마음속을 들려다 볼 수 있는 노회함이 생기는 걸까. 강이는 아이를 짐스러워 하는 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아 사뭇 노인이 원망스러웠다. 꼭꼭 억누르고 있는 미움의 감정을 노인이 슬쩍 건드려 버린 터이다. 무뢰한 노인네 같으니. 강이는 노인을 외면한 채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버렸다. 다른 쪽 테이블에서 차를 마시고 있던 낯익은 얼굴들이 강이 쪽을 힐끔거렸다.
강이는 고향을 모른다. 일곱 살 때부터 보육시설을 전전했고, 그 이전의 기억은 생각도 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생면부지인 Y읍에 주소지를 옮기고 사서시험을 치게 된 것은 사랑하던 남자의 고향이 Y읍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모와 다섯 형제가 이 고장에 탯줄을 묻었고, 출가하기 전까지도 그가 살았던 곳이다. 그는 Y읍을 끔찍이도 사랑했다. 두 시간 거리의 대학을 사 년 동안 통학으로 다녔을 정도였다. 강이는 그와 결혼해서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 그래서 난생처음 고향을 갖게 되는 마음을 만끽해 보고 싶었다.
막상 강이가 사서시험에 합격하고 Y읍의 군민이 되었을 때 남자는 머리를 깎고 홀로 떠나버렸다. 사랑하던 그의 가족과 고향을 남겨 둔 채로. 지리산 깊은 골짝에 있는 암자로 들어갔다는 풍문이 있었지만, 한번 어긋나기 시작한 인연은 어디에서도 다시 만날 수가 없었다. 줄을 놓쳐버린 연처럼 허공과 땅, 이편과 저편에 마주서서 망연히 바라만 보아야 하는 우주의 질서. 손을 내밀어 허공 속으로 날아간 연줄을 잡으려 하면 할수록 땅위의 몸은 더욱 꼼짝할 수 없게 굳어져 버리는 미혹이 된다. 강이는 간절히 원하는 것일수록 더 가질 수 없다는 것을 떠나버린 그에게서 배웠다.
그가 떠난 후로 Y읍은 오후 네 시 도서관 서고에 갇힌 책들처럼 무료해져 버렸다. 노인은 강이가 안타까워 보였다. 눈에 보이는 육신이 아픈 사람은 육신이 아픈 사람을 알아보고, 마음이 허전해서 병든 사람은 바람든 무속 같은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는 법이다.
노인은 칠순이 넘도록 한 남자만 기다려왔다. 그 대가로 결혼도 못했고, 차진 자궁 속에 생명을 키워 보지도 못했다. 강이가 노인의 삶처럼 평생 돌아오지 않을 누군가를 기다리게 될까 봐 안쓰러웠다. 처녀 아이의 볼처럼 수줍은 연 자주 빛 그리움이었다가, 푸른 물이 철철 배도록 절절하게 아픈 신병으로 몸살을 앓다가, 결국은 가슴에 붉은 멍자국을 새기고 고개를 떨구는 꽃. 짧은 계절 동안 여러 색을 살다가는 수국처럼 절절한 기다림이 노인의 생이었다.
강이 네가 이사한 지 얼마 안돼서 노인은 경대 안 깊숙한 곳에 간직한 물건을 강이에게 자랑하듯 내놓았다.
여러 겹의 손수건으로 싸고 또 싸고 소중한 보물처럼 간진 된 물건은 오래된 분첩이었다. 50여 년 전에 일본으로 유학 떠나던 남자가 주고 간 마지막 선물이었다. 딱딱하게 굳어버린 분첩.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분첩 하나를 믿고 노인은 지금까지 생을 견디어 온 것이다.
퇴근을 하고 돌아와 보니 방은 텅 비어 있고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 불안해진 마음으로 불이 켜진 안방에 대고 노인을 불렀으나 인기척이 없다. 벌컥 하고 밖에서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안에서 문이 단단히 잠겨 있다. 강이는 창살에 조그맣게 덧대진 유리조각에 눈을 대고 방을 넘어다본다. 순간, 서늘한 광경에 가슴 한쪽이 쫙하고 뻐개진다. 방안 쪽 문고리에 숟가락이 자물쇠처럼 걸려 져 있는 게 보인다. 구부러진 놋숟가락 하나가 노인을 지켜주는 빗장이었구나.
사람과 함께 낡아 가고 있는 가재도구들이 차지하고 남은 노인의 공간은 형편없이 작고 초라했다. 그 가운데 노인과 아이가 태아처럼 구부린 채 잠들어 있다. 자세히 보니 아이가 노인의 젖을 빨다가 잠든 모양이다. 칠순노인의 것이라 하기에는 미끼지 않을 정도로 하얗고 탐스러운 유방이 아이의 얼굴 속에 묻혀 있다. 수밀도 같이 부드럽고 실팍한 속살은 사랑하는 남자와 헤어지던 청춘 그대로일까.
잠든 노인을 바라보며 강이는, 칭얼대는 아이에게 수유를 하는 젊은 아낙의 꿈이라도 꾸었으면 하는 생각으로 아득해 진다.
아이를 데려온 후 처음으로 함께하는 외출이다. 소풍이라도 나온 듯 아이는 들떠 있다. 강이는 겨울에 입힐 방한내의와 아이가 골라 놓은 옷을 몇 벌 샀다. 그리고 피자가게 앞에서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한 아이를 데리고 들어가 피자를 시켰다. 피자를 기다리는 동안 아이가 주머니 속에서 꼬깃꼬깃 접힌 쪽지를 내놓았다.
한마음잔치. 모월 모일. 군(郡)내의 모든 유치원 어린이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부모와 동반해서 체육대회를 개최한다는 내용이다. 아이는 알림장을 받은 날부터 강이의 눈치를 살폈던 모양이다. 종이가 접힌 자욱마다 부옇게 닳아있다. 아이 손을 잡고 한마음 잔치를 하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아이가 한눈을 파는 사이 먹다 남은 피자판 밑으로 알림장을 밀어 넣어 버린다. 나른하게 배가 부른 아이를 채근해서 미용실로 데리고 들어간다.
희끗희끗 파마 약이 베인 검은색 앞치마를 두르고, 노랗게 염색한 머리를 뾰족하게 세운 여자가 하루 장사를 마무리하기 위해 청소를 하고 있다. 여자가 쓸어내는 빗자루 끝에서 잘린 머리카락들이 뭉텅뭉텅 몰려다닌다.
“아이, 머리 좀 자르려고요. 짧은 커트로 해 주세요.”
여자가 키가 작은 아이를 위해서 뭉툭한 보조대를 의자에 올리고 그 위에다 아이를 앉힌다. 거울 속의 아이가 자울거리며 졸고 있다. 사삭사각 가위질을 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바닥에 나뒹군다. 잘라도 잘라도 다시 길어나는 머리카락. 무력하게 잘려나간 머리카락처럼 아이의 작은 번뇌와 집착도 녹아 없어졌으면, 그때였다.
‘앗’
머리를 자르던 여자가 나뒹구는 머리카락에 덥석 주저앉으면서 날카로운 단발음을 질렀다. 발바닥에 머리카락이 파고든 것이다. 여자는 절뚝거리며 수납장 앞으로 걸어가 서랍에서 실패를 꺼내더니 주황색 소파에 앉은 채, 바늘로 발바닥을 후벼파기 시작한다.
자주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아픔까지 익숙해지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처음에는 멋모르고 머리카락이 보이는 자리만 오부작거리며 팠는데 그렇게 했더니 머리카락이 중간에 끊기더라고 했다. 반 토막만 남은 머리카락 잔해는 더 깊이 살 속으로 파고든다고 한다. 피가 나더라도 애초부터 바늘을 깊이 찔러야 한다고 미간을 찡그리며 여자가 말했다.
그리고 핏물에 밀려나온 검은 상처의 증거물을 강이에게 보여 주었다. 상처는 상처로 우벼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통증은 점점 더 깊이 곪아 들어갈 것이다. 아이는 강이의 살을 파고드는 상처다. 바늘로 머리카락을 떠내 듯 강이의 삶 속에서 아이를 깊게 도려내 버릴 것이다.
남자는 쉬는 날마다 도서관에를 다녀간다. 오늘은 남자가 쉬는 날이다. 강이는 남자의 부인을 알고 있다. 가끔, 키가 작고 통통한 여자가 두 아들을 데리고 와서 남자의 대출증으로 아동도서를 대출해 가곤 한다. 남자의 부인은 책은 읽지 않지만 말은 많이 한다. 남자가 일주일에 오일은 새벽까지 버스를 운전하고, 사흘 사이로 하루씩 쉬는 날은 온종일 방안에 틀어박혀 잔다고 한 것도 그의 부인한테서 들은 얘기다.
먼지가 풀풀 날리는 군내버스 개찰구에서 표를 받고 서 있는 남자 옆에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자를 언젠가 본 것도 같다. 간질환을 앓는 환자처럼 충충하게 그을린 얼굴. 수면부족으로 붉게 충열된 남자의 눈빛이 불결해 보인다. 남자의 손에는 오늘도 두 권의 책이 들려있다. ‘아이와 대화하는 방법’, ‘오지로 떠나는 여행’. 남자는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일까. 다람쥐 쳇바퀴 같은 버스노선. 남자는 승객들이 요구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떠나고 싶을 것이다.
남자가 가고 싶어 하는 오지는 어디일까. 남자가 자료실을 나가고 뒤미처 강이의 핸드폰에 벨이 울린다. 하교한 학생들이 3층 열람실을 오르내리는 소리에 도서관 건물이 통째로 떠들썩해진다. 하루종일 좌불안석으로 어수선했는데, 퇴근준비를 하는 강이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진다. 아침에 아이는 노인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노인이 말하던 절로 아이를 보내기로 결정한 것이다. 상처는 살 속 깊이 파고들기 전에 뽑아 버려야 한다고 위무하면서도 알 수 없는 자책감이 자신을 내동댕이쳐 버리고 싶게 만든다.
아이가 없는 텅 빈방을 잠깐 생각 하다가 강이는 핸드폰 폴더를 연다.
“”
저장된 여러 개의 전화번호 중에서 남자의 이름을 찾아내고 길게 통화버튼을 누른다.
진한 무스크향을 헤지고 남자가 입고 있는 가죽재킷에서 노릿한 동물의 체취가 느껴진다. 사이드 미러속에 비친 남자의 얼굴에는 조소를 하는 듯한 표정이 담겨있다. 남자를 태우자 강이는 읍내 외곽을 벗어나 음식점과 노래방이 즐비한 유원지 쪽으로 페달을 밟았다. 인공으로 만든 저수지가 가까울수록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깜빡이는 모텔들이 많아진다. 염탐하면 할수록 질척거리는 욕망. 저수지 둔치 곳곳에 어둠으로 위장한 차들이 정박해 있다.
좁은 차 안이 남자가 품어내는 욕망으로 질식할 것 같다. 지금껏 침묵하고 있던 남자가 강이 쪽으로 몸을 기울인다. 어찔어찔 멀미가 나고 속이 울렁거린다. 어둠 속에서 붉게 충열된 남자의 눈이 번들거린다.
운전석 안에 갇혀 있는 강이의 허벅지 사이로 남자의 손이 스쳐간다. 아이는 지금 절에 있는 것일까. 귓불 사이로 후덥한 입김이 들어와 박힌다. 남자의 동선을 따라 향수에 절인 가죽 냄새가 요동을 친다. 노인은 집에 돌아왔을까. 남자의 거친손이 블라우스 앞섶을 헤치고 젖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울컥하고 구토가 치밀어 올라온다. 아침부터 아무것도 먹지 못한 빈속에서 쓰디쓴 담즙이 게워져 나온다.
“제기랄, 네가 먼저 유혹한 것 아니야.”
어두운 허공 속에 웅크리고 앉아 토악질을 하고 있는 강이의 등 뒤로 남자의 욕지기가 날아와 아프게 꽂힌다.
노인은 일찌감치 집에 돌아와 있다. 피로에 지쳐서 깜박 잠이 들어 있던 노인에게 암자의 위치를 물어서 무작정 어둠 속으로 차를 내몰았다. 안개가 낀 밤길인데다 초행이라 운전까지 더듬거렸다. 마음이 조급해서 번번이 이정표를 놓쳤다.
그렇게 두 시간쯤 달리고 나니 낮은 산 중턱에 옹기종기 불빛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산속으로 잘 닦여진 시멘트 포도를 따라 가로등이 길게 도열해 있다. 경사가 급한 막바지에서 찻길이 끝났다. 널찍한 공터 한쪽에 차를 세워두고 터버터벅 걸어서 암자로 이어진 돌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강이가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절로 갔다.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부모님의 위패가 절에 있고, 길 위에서 부객이 되어 떠돌던 산이 오빠의 영혼도 위패로 남아 있다.
사랑하던 남자는 살아서 절로 찾아들어 갔고, 아이는 세상에서 버려진 채 절로 갔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이 동시에 적멸을 이루는 곳. 끝이 영영 보이지 않을 것 같은 길을 걸어서 강이는 절의 좁은 입구로 들어서고 있다.물속에 잠겨 있는 듯 정적에 휩싸인 암자. 법당 한 채와 요사채 하나가 전부인 조그만 절이다.
강이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요사체 쪽으로 걸어간다. 쭈뼛거리며 불안한 목소리로 스님을 불렀다. 무응답. 연거푸 서너 번을 재우쳐 부르자 미닫이 유리문이 열리고 스님 한 분이 모습을 들어낸다. 강이는 생급한 표정으로 아이를 데리러 왔다고 말한다. 그러자 스님은 기다리던 사람이 오기나 한 것처럼 심드렁하게, 법당에 가서 백팔 배를 먼저 하고 오라고 하더니 안으로 쑥 들어가 버린다.
법당에 들어서자 촛불을 밝히고 향을 한 개비 피워 올린다. 코끝으로 전단향이 흘러들어오자 하루종일 들썩이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지심귀명례.(목숨을 바쳐서 본래의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두 팔과 두 다리를 낮추고 머리를 낮춰서 바닥에 엎드린다. 눈에서 진득진득한 번뇌가 녹아나온다. 지심귀명례. 차가운 나무바닥에 상현(上弦)처럼 웅크린 몸을 낮출 때마다 홍수에 냇둑이 터져 버린 것처럼 눈물이 솟구친다. 지심귀명례. 미혹한 중생. 소리를 억제한 통곡이 법당 안을 공기처럼 맴돈다.
백팔 배를 마치자 등줄기가 축축하고, 흘러내린 머리카락이 눈물과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다. 그러나 마음만은 후련했다. 법당을 나오자 조금전에 안면식을 했던 비구니 스님이 서있다. 통곡 소리를 들었을까. 어둠 속에서 강이의 얼굴이 일순 붉어진다.
“향기가 좋구나!”
그러고 보니 경내에 정적과 함께 떠다니는 것이 또 있다. 발 없이 백 리를 간다는 향기. 금목서 향기였다. 형체도 없는 것이 어둠 속에서 길을 밝히고 있다. 스님은 쌀뜨물처럼 뿌연 안개 속에 엎드린 산아래 마을을 응시하며 독백처럼 나직하게 읊조렸다.
“실컷 울었느냐, 길을 잃어버린 모양이구나.”
“……”
아이는 잠들어 있으니 안심하라고 일렀다. 노인이 내려가고 난 뒤 낯선 곳이 서러워서 하루종일 보채다가 초저녁에야 겨우 체지기를 하며 잠이 들었다고 한다.
“스님, 천지가 모두 안개 속 같고, 한 군데도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것은 모두 변한다. 내 밖에서 의지할 곳을 찾지 마라. 조용조용 저편에서 스님의 설법이 향기처럼 전해져 왔다. 고향이란 다른 사람, 어떤 장소에 형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마음이 곧 너의 고향이다. 오직 마음만이 본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고향이다. 마음을 보지 못하면 중생은 영원히 고향을 찾아 떠도는 실향민이 된다. 고향이 없는 사람에게는 사방이 불이 밝혀 있는 대낮이어도 눈앞이 어두운 법이다.
강이는 안간힘으로 잡고 있던 줄이 투 두둑하고 하나씩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마음으로 등불을 밝혀라. 잠든 아이를 들쳐 엎고 돌계단을 되짚어 내려온다. 강이는 길 잃은 새끼노루 한 마리를 엎고서 차가운 물속을 건너는 기분이 들었다. 금목서 향기가 주차장까지 따라왔다. 고향을 찾아 길을 걷다가 신발 뒤축이 닳거든 언제든지 다시 와서 고쳐 신으라고 말하던 스님이 저 멀리 계단 끝에 서서 전생처럼 내려다보고 있다. 강이는 노인의 마당에도 금목서를 구해다 심어야겠다고 다짐한다.
건둥건둥 오전 업무를 마무리해서 김주임에게 인계하고 서랍 속에 넣어둔 가루분을 챙겨 넣었다. 노인에게 선물할 것이다. 시험기간이라 학교를 일찍 파한 여학생 한 무리가 재잘거리며 도서관입구로 몰려들어 온다. 그네들이, 까르르 가벼운 웃음소리를 흘리자 비릿한 향기가 현관에 진열된 국화 화분을 거쳐 출렁 하고 퍼져나간다. 강이는 생명력이 넘치는 날것의 비릿한 향기에 떠밀려서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노인과 아이는 지금 한마음잔치가 열리는 운동장에 함께 있다. 아이 곁에 노인이 있어서 안심이 되었다. 이사하는 날 부터 아이는 자연스레 노인을 잘 따랐다. 긴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는 부모의 심정처럼 운전대를 잡은 강이의 손이 부르르 설레었다.
넓은 운동장에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한데 모여 축제 분위기가 가득하다. 운동장 가상으로 여러 개의 현수막이 처져있고, 현수막마다 유치원 이름이 개별적으로 적혀 있다.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 푯말이 붙여진 곳을 찾고 있는데, 아이가 먼저 강이를 발견하고 뛰어 왔다. 절뚝거리는 다리로 아이의 뒤를 따라온 노인이 한숨을 토해낸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하는 경기가 있는데, 강이가 오지 않자 여태껏 애를 태우고 있었던 모양이다. 강이와 아이는 손을 잡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출발선에 섰다. 그들 앞에는 철심으로 뼈대를 만들고 두꺼운 색종이를 덧대서 살을 붙인 커다란 공이 놓여 있다. 푸른색 큰 공을 굴려서 반환점을 돌아와야 하는 경기다. 강이는 아이와 함께 둥그런 원을 쉬 임 없이 밀어 나가야 한다. 강이가 굴리고 가야 할 공처럼 일생(一生)은 둥글게 순환한다.
둥글게 영속하는 궤도 속에서 어느 날은 아이의 얼굴과 만나서 탄생의 기쁨과 상처를 배우기도 하고, 어느 날은 노인의 얼굴을 하고서 소멸해 가는 것의 진리를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탄생과 소멸은 하나의 커다란 원이다.
중심을 헤아릴 수 없는 원 속에서 각자의 원을 둥그렇게 부풀려 가는 것이 삶이다. 삐리릭, 출발을 알리는 후루라기 소리가 들려 왔다. 하나, 둘 구령을 부치며 앞으로 나아 간다. 반환점을 돌아서 강이와 아이가 돌아가야 할 종점이자 출발점인 자리에서 묵묵히 응원을 하고 있는 노인의 하얀 머리 위로 하오의 햇살이 반짝 쏟아져 내린다.
〈끝〉
소설 당선소감
“고통의 시간 뚫고 창작의 세계로”
희망이란 말처럼 절망적인 단어가 또 있을까. 모양도 없고 기약도 없는 기다림을 전제로 앞 만보고 나아가야 하는 헤엄 질. 그것은 시시각각으로 면상을 때리는 외로움이고 고독이다.
형상 없음에 매혹 당한 형벌은 가혹해서 그 이름을 알았다는 이유만으로 애오라지 망부석으로 생을 살아야 한다. 내게 소설이 그러하다. 어느 날부터인지 세간(世間)의 시간은 나를 앞질러 뛰어가기 시작했는데 꼼짝할 수 없었다. 그때부터 시계의 태엽을 잠그고 아예 나이를 멈추기로 했다. 이번 생은 덤으로 살아 버리자. 다음 생에 수행자나 글쟁이로 만날 수 있는 필연을 만들기 위해 이번 생을 투자하는 거다. 그렇게 작정하고 살기로 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아픔이나 불행이 다정한 친구를 만나는 일처럼 소중해 지기 시작했다. 생(生)을 사랑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제가 친구가 아이를 낳는 일은 하늘이 노랗다는 말을 체험하는 일이라고 했다. 하나의 틀을 깨고 세상으로 나가는 일은 아이를 낳는 산모의 고통이며, 컴컴한 자궁 속을 홀로 뚫고 나가야 하는 신생아의 외로움이다. 이제 얇은 막 하나를 뚫고 세상으로 나아간다. 하늘이 노래지는 고통과 통정해서 뜨거운 아이를 받아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 멈춰버린 시계의 태엽을 풀어놓는다. 이제부터 나는 빠르게 나이를 먹어갈 것이다.
첫발을 내딛는 발자국의 증인이 되어 주신 조정래 선생님, 절차탁마로 힘이 되어주신 해남불교대학 스님들께 먼저 삼배를 올린다. 그리고 밤새도록 열거하고 싶은 많은 인연과 불교신문에 감사드린다. 마지막으로 가장 순수한 후원으로 지켜봐 주시는 내 눈물 좌에 계시는 노모와 가족에게 당선의 기쁨을 드린다.
이 림
소설부문 심사평
“작품 완성도와 활력있는 문장 돋보여”
많은 작품들 중에서 1차로 네 편을 골랐다. 김민영의 ‘시크릿 가든’, 노경찬의 ‘쪽빛이 시리도록 푸른 이유는’, 이림의 ‘실향’, 이홍사의 ‘숨쉬는 벽화’가 그 작품들이다. 그런데 ‘시크릿 가든’은 문장의 감각이 살아있는 것은 참 좋았지만 이야기의 필연성 없는 피상성이 결정적 흠이었다. 또한 ‘쪽빛이 시리도록 푸른 이유는’ 역시 문장의 세련미와 구성의 탄탄함같은 좋은 점이 마음을 끌었지만 너무 과한 주제의 노출이 작품을 금가게 하는 아쉬움이었다.
나머지 두 작품을 놓고 마지막 고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숨쉬는 벽화’는 주인공의 직업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갖추는 등 글쓰는 기본자세의 충실성이 돋보이고, 문장력도 탄탄했다. 그러나 이야기의 형상화에서 미흡함이 드러나는 것이 못내 안타까웠다.
결국 작품으로서의 완성도와 문장 감각의 생기같은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는 ‘실향’을 당선작으로 뽑게 되었다. 이림씨는 작품을 꽤 써본 사람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좋은 글, 남을 감동시킬 수 있는 글이란 하나의 재주에 아흔아홉개의 노력이 바쳐져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 앞으로 많은 정진 있기를 바란다.
조 정 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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