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버스 / 나해철
코끝이 어는 승강장에 서면
너처럼 오고 또 너처럼 오지 않는 것들을 생각한다.
가족을 모아 고향을 일구고 싶은 아버지의 꿈과
산바위 위에서나 소리쳐 부르는 스무 살 동생의 터질 듯한 가슴과
끝끝내 기다림의 불쏘시개만 넣고 마는 새벽마다의 시
뱃속까지 시원하고 다디단 바람의 어느 봄
일렁이며 터져 남이나 북 개울과 마을을 환히 밝힐
그 날의 빛들을 생각한다.
길이 멀고 끝이 없으면 그만큼 더디 오고
기다리는 사람이 몇 안 될수록 애터지게 오지 않는
너는 그러나 온다.
황혼 그리고 어둠이 들어 모두들 쓰러져 눕기 전
언제나 눈부신 소리로 먼저 온다.
얼어붙은 손끝과 가슴 하늘과 산그림자가 깨어나며
달려가 맞이하는 기다림의 끝. 평화와 따뜻한 것.
버스에 오르면 풀밭처럼 잡목림처럼 안기고 섞이어
살의 온기로 데우고 서로 녹여
살붙이로 하나가 되는 사람들.
희망은 너처럼 오지 않고 또 너처럼 온다.
물밀듯이 밀려오는 기쁨과 눈물겨움
감사와 복된 춤 노래와 빛이 터지는
그 날의 이 땅 위에 서듯
흙도 피도 얼어붙는 칼바람 속에서 버스에 오르면
기어코 너처럼 오고야 마는 우리들의 희망에 대해서 생각한다.
몸은 덥혀 지고
누군가를 데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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