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학자 / 박성룡
나는 어느날 어느 곤충학자 한분의 댁을 방문하였다. 일찍이 '일생을 벌레와 함께 살기로 작정하였다'는 이 노학자의 말을 나는 무슨 인생철학처럼 귀담아들으면서 왠일인지 시선은 자꾸만 그 노학자의 서재 西面에 붙어 있는 곤충채집의 액자들로 향하였다. 그 액자들 속에는 갖가지 곤충의 아름다운 날개들이 핀에 꽂힌 채 푸드덕거렸다.
사면이 울창한 숲에 둘러싸인 속에 그 곤충학자의 집은 있었고 더욱이 서재는 높은 이층에 위치한 탓인지 언젠가 한번은 그 벽에 걸린 곤충의 날개들로 하여금 이 노학자의 가옥은 기어코 어디론지 푸드덕푸드덕 날아가버릴 것 같은 기세를 보이었다.
---- 돌아오는 길에는 이미 내 사지에도 크낙한 곤충의 날개들이 돋아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켰다.
시선집 <풀잎> 창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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