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한국명시

매듭 속의 강 / 유종인

시인 최주식 2010. 2. 7. 15:22

매듭 속의 강 / 유종인

 
강가 잔디밭에 앉아
뜨개질하는 여자가 있네
봄을 좀더 촘촘히 엮으려는 바느질처럼
겨울은
바늘에 머릿기름을 묻히듯
잔디밭 여기저기 연초록 코바늘 싹이
꽂히듯 솟아 있네

한 코 한 코 엮어가는 스웨트는
허공이
마음먹고 모여든 털실 앞에
제 빈 몸을 터줬기 때문이네

돌 속에 꽃을 뜨개질해 넣고 싶던
저 여자, 가슴 속의 남자를
짰다가 풀고 짰다가 풀길 수백 번
겨우 벙어리장갑 한 짝으로 다다른 늦겨울이네
풀리지 않는 일들을
격자무늬처럼 매듭짓다 보면
한 매듭 속에 들어왔다 나간 강물의
소용돌이는 차마 소중하고 아득하여

이 강물 저 강물 보이지 않게 손잡으며
만다라의 넉넉한 바다 옷 한 벌 짤 수 있을 것이네

눈물로 소금을 짠 여자의 한낮이
쉬 지워지지 않을 것 같은
그림자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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