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버선 / 손창기

시인 최주식 2010. 2. 7. 21:02

버선 / 손창기

 

아카시아에도 버선발이 있는가 보다

 

바지랑대에 매달려 있는 꽃망울에는

발뒤꿈치가 자란다

 

회한과도 같은 향기를 아그데아그데

피어 올린 제 버선이

향기로운 사향주머니였다는 것

 

흰 옥양목을 앙감질로 밟듯

터질 듯한 속살이 드러난다

한 겹, 두 겹 속버선 벗겨진 사이로

뾰족이 코끝을 내미는 실밥들,

 

상처 터진 자리에 봄이 돋고

이 고요의 그늘 속에

시린 발목을 내놓은

 

꽃들이 지그재그로 만개한 버선들을 열고

너널너널거리는 동안

지상엔 티밥만한 햇빛들이 수북이 널브러진다

봄이 다 널브러진다

 

<2003년. 현대시학 당선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