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와 단풍나무의 허기 / 백상웅
배곯아도 뒹굴 수 없는 너는,
쓰름매미 때문에 겨드랑이가 쓰릴 일이 없겠다
팔을 불쑥 내밀어 깃털구름을 건져 올리거나 가장 처음으로 붉게 물들 잎사귀 한 장도 찾아내지 못하겠다
나는 창문 밑에 쭈그리고 앉아 빈 밥그릇을 긁는다 쓸쓸할 법도 한데, 통 말이 없다
햇볕이 옹이진 창문턱 위에서 너는 적막하다 주먹만 한 화분에 밭을 일굴까 말까, 고민하는 화전민처럼
빌린 텃밭이라도 뿌리를 뻗을 곳 있어 좋겠다
다만, 한쪽으론 붉은 안테나가 박혀 있는 마당귀가 보이고 또 한쪽으론 두부찌개가 조글조글 졸고 있는 부엌
헷갈리겠다 너는,
창문을 닫아야할지, 몸을 구부려 전파를 잡아야 할지, 가스 불을 줄여야 할지, 어쩔 줄 몰라서 잎사귀 가장자리만 뜯고 있는지도
직장을 잃은 주인이 더 좁은 방으로 세간을 옮겨 가는 동안 나처럼 귀만 밝아졌나?
처마 끝에선 낙숫물 소리, 꽉 잠긴 수도꼭지에선 물방울이 싱크대로 떨어지는 소리
푸르고 얇은 귀가 물에 잠기면 물속에선 또 털 뻣뻣한 내가 눅눅하게 짖어대는 소리
너는 물렁한 낮잠에 들겠다 더운 국물이 넘쳐나는 밥그릇을 찾다가 이를 갈기도 하겠지만
뿌리에서 우듬지까지 물을 길어 올리는 데 하루도 채 걸리지 않을 너도 슬며시 속을 묶고 산다
그늘을 걷어내야 할지, 꼬리 흔들며 내 꽁무니를 쫓아야 할지
절반은 식물처럼 또 절반은 짐승처럼, 막막하겠지만
<시와 경계> 2009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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