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춘문예 당선詩

제13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 / 구부러진다는 것 / 이정록

시인 최주식 2010. 2. 7. 21:20

제13회 김달진 문학상 수상작

 

 

구부러진다는 것 / 이정록


잘 마른

핏빛 고추를 다듬는다

햇살을 차고 오를 것 같은 물고기에게서

반나절 넘게 꼭지를 떼어내다 보니

반듯한 꼭지가 없다, 몽땅

구부러져 있다


해바라기의 올곧은 열정이

해바라기의 목을 휘게 한다

그렇다, 고추도 햇살 쪽으로

몸을 디밀어 올린 것이다

그 끝없는 깡다구가 고추를 붉게 익힌 것이다

햇살 때문만이 아니다, 구부러지는 힘으로

고추는 죽어서도 맵다


물고기가 휘어지는 것은

물살을 치고 오르기 때문이다

그래, 이제, 말하겠다

내 마음의 꼭지가, 너를 향해

잘못 박힌 못처럼

굽어버렸다


자, 가자!


굽은 못도

고추 꼭지도

비늘 좋은 물고기의 등뼈를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