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시와창작 문학상> 당선작
전어 외 2편 / 김혜경
전어 몸에 기름이 돌고
사람들은 가을을 씹는다
매암섬 밑
수천 마리 물고기 떼 붙은
자루가 발견되었다
살이 다 차지도 않은 어린 가리비처럼
열려 있는 소녀의 젖
전어 몸보다
가시가 더 많은 세상
우리가 발라내야 할 살의 무게는
자루 한 자루
어미의 통곡 소리
파도에 부딪혀 갈라지고
현장 수사 끝낸 형사들
선창에 앉아 매운 양념 소주
전어무침을 오독오독 씹고 있다
그물을 깁는 노인 / 김혜경
노인은 그물을 선창에 널었다
바람도 비린내가 났다
머리칼이 푸석한 그물 같았다
수캐는 낡은 창호지처럼 힘이 없다
거제도 하청면 장곶마을로
동백꽃 같은 여인이 시집을 왔다
여인은 지아비를 따라 거울같이
차가운 바다에 갔다
술에 미친 사내는 물을 푸다
바다에 빠진 아내를 두고 돌아왔다
복사꽃같이 화사한 여인들이 연일
야밤에 그 집을 나가버렸다
어린 아들은 앉은뱅이꽃처럼 더 이상
자라지 않았다
늙은 수캐는 이젠 눈조차 바다를 향하지 않는다
노인은 찢어진 추억을 기웠다
바닷가 작은 마을 그의 선창가에는 기워야 할
수많은 상처들이 술병처럼 널려 있다
凍結 보존에 대한 동의서 / 김혜경
-본인은 수정란 동결 보존에 있어서 합의하고 이에 서약합니다
내게 엄마라고 부를 아이야, 봄날처럼 흔들리는 나를 믿지 마라. 차가운 실험관속을 엄마의 뱃속이라 믿는 건 아니겠지. 아침 일찍 덜컹대는 버스를 타고 너를 만나러 가는 길은 알 수 없는 희망으로 설레인단다. 시퍼런 주사바늘의 무서움도 달게 받으마.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똑같이 키운 너희들과 한 집에서 살 수 없는 슬픈 음모가 무서운 게다. 칭얼대는 너를 떼어놓고 오는 저녁, 빙하 속을 헤매는 악몽을 꾼단다. 얘야, 그만 울음을 그쳐라. 너를 위해 매일 싸늘한 방에 군불을 지피고 저녁을 준비 한단다. 먼저 온 형들은 싸늘한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구나. 어미의 집은 스필버그의 영화 속 마지막 장면처럼 행복하지도 거인의 정원°처럼 넓은 놀이터도 없단다. 하지만 얘야, 오늘부터 너를 위해 나를 버리는 연습을 하마. 그러니 두려워 말고 손을 내밀어 다오.
*오스카 와일드의 동화
- 제6회 시와창작 문학상 선정 사유
2007년 여름, 4회 심사에서 ‘당선작 없음’을 발표할 때 우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시와창작 문학상>의 심사는 투고자들에게 '시집을 내도 좋겠다.', '아직 보류할 때이다.', 혹은 '모두 내다버리고 새롭게 쓰는 편이 낫겠다.' 등을 훈수하는 입장인 것이다. 어찌 불안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어 본선에 진출한 작품들과 심지어 예선을 통과한 작품까지 샅샅이 읽고 난 뒤의 참담함은 다음과 같이 토로했다.
“남과 다르지 않을 바에야 무엇 하러 제 이름이 박힌 시집을 묶어내려는 것일까, 남들이 이미 오래 전부터 보았고 말해온 것을 자기 이름으로 한 번 더 말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빤한 발견을 아무런 시적인 해석이나 함축도 없이 긴 호흡으로 지루하게 토해 놓는 일은 산문에서조차 악덕으로 취급받는 안이한 창작태도가 아닌가.”
불안해하고 불만을 토로하고 결국 뽑지 못하기를 5회에도 거듭했다. 그 때는 너무 참담해서 심사평도 제출하지 못해 발행인이 짧은 보고의 형식으로 대신했다. 이쯤 되니 금번 6회에 이르러서는, 3회 연속 당선작 없음은 폐지 선언이나 다름없는 거 아니겠나 싶어 여차 하면 발행인에게 “돈도 안 되고 보람도 없어 보이는 일, 그만 하시죠?” 할 태세로 심사에 임했다.
본선에는 엄혜숙, 장수철. 김혜경 세 분이 올라왔다. 두려운 마음으로 세 분으로부터 온 원고를 다 읽고 나서 우리는 일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뜻 한 분을 고르기가 힘들 정도로 만만치 않은 갈고닦음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은 따뜻하고 진지하되 고루하지 않았고 피상적인 사유에서 멈추지 않고 힘껏 밀어붙이려는 인식 태도가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한 권 분량 시편이 허투루 쌓인 분들이 아님에 틀림없어 보였다. 결국 장점이 아닌 결함으로 판가름하는 수밖에 없었다.
엄혜숙의 결함은 ‘시대성이 결여된 소재감각’이다. 언어능력은 결국 소통능력에 다름 아니다. 쉬운 표현을 쓰든 고도의 상징을 쓰든 새로운 어법을 개발하든 언어는 동시대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수단이다. 보편타당한 주제를 노래할수록 오히려 소재와 발상의 참신함이 더욱 요구됨을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다. 눈앞에서 붕붕 날것으로 왔다 갔다 하는 이 시대의 생생한 소재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여라.
장수철의 결함은 ‘운문으로 온전히 넘어오지 못함’이다. 시는 함축적 진술이나 이미지 뒤에 해설을 덧대지 않음을 소통의 미덕으로 삼는다. 굳이 그렇게 해야 하는 테마라면 운문이 아닌 산문을 택하는 편이 낫다. “눈 있는 자는 보고, 귀 있는 자는 듣고, 코 있는 자는 냄새 맡고, 혀 있는 자는 맛을 느껴라. 굳이 시력이나 청력이나 후각이나 미각에 문제 있는 사람까지 염려해 친절을 베풀지는 않겠다.” 시인들이여, 온화한 미소 속에 그런 괴팍스러운 고집을 품자.
김혜경의 결함은 ‘어눌語訥을 활용하지 못함’이다. 독자가 들어갈 틈이 너무 좁거나 아에 없다. 본선 세 분 가운데 가장 공부가 깊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이미지를 다루는 솜씨가 매우 능숙하며 구성도 치밀하다. 원고 가운데에는 <전어>를 비롯하여 과거 모 문예지의 등단작이나 수상작으로 뽑힌 수작들도 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린 너머의 세계처럼 살로 닿지 않을 때가 종종 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사실 등단, 곧 문인사회에 이름과 작품을 내밀어 인정받음보다 훨씬 어려운 일은 일반 독자들의 사회에서 인정받는 일이다. 일반인에겐 먹히는데 전문인에게는 안 먹히는 것도 문제지만 전문인에게만 먹히고 일반인에게는 안 먹히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그 비밀은 어눌함을 이용할 줄 알게 되면서부터 해결된다. 다행스럽게도 김혜경 본인이 그러한 문제점을 자각하는 듯하다. 식탁내력이 궁금해지는 아주 예쁜 똥 한 덩이를 보며 단단한 고집으로 뭉쳐진 시커먼 사고뭉치를 스스로 돌아볼 줄 아는 것으로 보아. 당선자를 김혜경으로 정하는 데에는 합의가 어렵지 않았다. 왜인고하면, 김혜경의 결함으로 지적한 ‘어눌함을 활용할 줄 앎’이란 사실 시 쓰며 살아가는 이들 모두가 평생 실패하기 일쑤인 얄궂은 결함이기 때문이다. 다만, 김혜경의 시편이 오늘날 요령부득의 난해함으로 지성을 포장하려 들거나 인식과 표현의 식상함으로 친절을 위장하려 드는 부당한 양극화 현상 앞에 경계를 긋고 경고의 등을 밝히는 데 일조하겠구나 하는 믿음이 우리에겐 분명히 있다. 이 믿음이 그에게 긍정적인 부담으로 작용하여 더욱 정진해주길 바란다.
심사위원 : 유용선. 임정일. 양영길
당선소감
오늘도 어제처럼 심령이 약한 나 자신과 구원 받지 못한 영혼들을 위해 새벽 예배를 드리기 위해 나섰다. 캄캄한 밤, 주님은 늘 별빛으로 또는 달빛으로 길을 인도하여 주신다. 메타쉐콰이어 나무 빈 가지 사이 차랑차랑 빛나는 별을 보며 깨끗하지 못한 내 마음을 닦고 싶어진다.
집에 와 따뜻하게 켠 온돌 전기장판 위에서 잠이 들었다. 신비한 꿈을 꾸었다. 내 영혼이 까치만한 나비가 되어 하늘을 훨훨 날아다녔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몸이 날아갈 것처럼 맑았다. 그래서인지 공부가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3시까지 하던 것을 두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
‘♪♪~’
전화가 울렸다. 이상하게 올해 들어 나이만 들고 늙어가는 내 불쌍한 詩들을 시집보내고 싶어졌는데…….
주님은 내가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아셨나보다. 모든 것을 온전히 비웠을 때, 내 자신이 빈 그릇이 되었을 때 채워주신다는 그 진리의 말씀을 몸소 체험한 날이다.
평생 시인이 꿈이셨던 아빠가 참 좋아하시겠다. 나이가 마흔이 넘었는데도 나는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아빠’라고 부른다. 왠지 ‘아버지’라 부르면 아빠의 흰 머리카락이 더 슬퍼지기 때문이다.
처음 詩와 만난 해는 십 일 년 전 봄이다. 대학에서 문학과는 전혀 다른 무역학과를 전공했는데 벌써 열 살 하고도 한 살을 더 먹었다. 시작할 때는 욕심이 아주 많았었다. 세상에 빛이 되는 글을 쓰고 싶다고……. 하지만 지금은 주님의 사랑을 전파하고 싶다.
끝으로 못난 내 詩를 보듬어 주신 심사위원 선생님과 가난한 글쟁이들에게 밝은 길을 열어 주신 <시와창작>사에 감사의 마음을 올린다. 이 모든 영광 하나님께 돌리며 옆에서 응원해 준 남편과 ‘참시’ ,‘울산아동문학회’, ‘동시마을’ 주민들과 기쁨을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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