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이 봄의 방화범 외 1편 / 한영숙

시인 최주식 2010. 2. 12. 22:56

이 봄의 방화범 외 1편 / 한영숙

 

꼼지락거리는 봄의 압력을 가누지 못해
가스 찬 압력밥솥처럼 겨울들이
폭발음을 내며 뚜껑을 박차고 탈옥한다
혈당농도 짙은

텁텁한 단백질의 하늘에서는
도무지 식을 줄 모르고 굴뚝 뭉글뭉글 게워낸
눈엣가시 스모그 떼들
꼴사나운 잡바람의 삐끼들이 활보하며 장악하는
무허가 뒷골목에서
꼬박꼬박 화대 챙기는
이 비상구 없는
콱 막혀있는 세상의 출구들

 

호되게 바람 맞은 여자 하나가
PET병만한 신나통에
진달래표 라이터를 만지작 만지작거리며
확 그어댈까 말까 골똘히 생각 중.

 

이 봄에 진달래꽃 터질까 말까 망설이고 있다

 

몽당연필 / 한영숙

 

내 안에는

아직 깎지 않은 새 연필 몇 자루와

쓰다남은 심 부러진 연필들이

한증막 장작더미처럼 수북이 쌓여있다

어쩌다 절반 넘어 닳아진 몽당연필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널려 있는 커피 자판기 아무나 뽑아낼 수 있는

복제된 일회용 컵처럼

쓰다가 몇 번 부러지면 서슴없이 던져버리는

내 부러진 시간들

언제 한번 진득이 끝까지

써보기라도 했단 말인가

장작불보다 더 활활 타 들어가는

내 열정을, 꾹꾹 눌러 쓸

생애의 끝까지 써야 될

연필 몇 자루는

도대체 어디쯤 있을까

 

시집<푸른 눈> 2009. 현대시 시인선 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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