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벽 / 이사랑
누구를 기다리는지
담 너머 골목길 넋 놓고 바라보는 해바라기
고개 아프겠다
가슴 활짝 열어놓고, 녹슨 철대문은
또 누구를 기다리지?
마을회관으로 출근하시는 울 엄니가
하시는 일은 고작,
화투판 한 쪽에서 조용히 주무시는 일
시끄러운 세상이 듣지 말라고 귀를 막았고
어지러운 세상이 보지 말라고 눈을 감긴
당신 소원은 잠자 듯 가는 것
남들은 돈 몇 푼에 핏대 올리지만
울 엄니가 어쩌다 화투를 치면 웃음판이다
잃어주며 즐거운, 욕심 없는 울 엄니
십 원짜리 웃음으로 하루해가 저물면
울 엄니의 속 깊은 친구는 바람벽이다
영감은 참 행복하시겄수
나랑 같이 가지 머시 그리 바쁘다고,
벽에도 귀가 있어 그 말씀 알아듣는다
사람이 그리운 날은 이놈, 이놈!
컹컹 짖어대는 애꿎은 개만 나무라시다
텔레비전 저 혼자 떠들든 말든
바람벽을 마주보고 주무시는,
푸른 양철지붕 아래 울 엄니
<우리詩> '신작소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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