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질경이 외 1편 / 이옥자

시인 최주식 2010. 2. 12. 22:54

질경이 / 이옥자

 

  길바닥, 질경이가 지천이다 짓밟혀도 다시 살아 질기다는 질경이, 원줄기 없이 돼지 귀처럼 생긴 여러 잎이 땅바닥에 납작 누웠다

 

  여름이면 방망이처럼 빼 올린 꽃대에 가을엔 잘게 여문 차전자씨가 가득하다 까만 씨앗은 오줌발이 세지고 눈도 맑게 한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 어린잎은 한 끼의 끼니로도 넉넉했다

 

  한의사였던 아버지 질경이가 여물 때면 베주머니를 몇 개 주셨다 방과 후 친구들과 메뚜기 뛰노는 들판에서 까맣게 여문 씨앗을 주르르 훑어오면 아버지는 주머니에 용돈을 채우셨다 해마다 가을이면 내 용돈이 지천이다

 

  시집<타오르는 불꽃> 2009년 도서출판 천우

 

가시연꽃 / 이옥자

 

늪이란 곳에서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식물도 작은 곤충도

오케스트라처럼 소리의 화음을 이룬다

 

생명소리

가득한 곳, 방패처럼 큰 잎들이 늪을 덮는다

튼튼한 방패 뚫고 나온 저 가시대궁, 날카로운 창이다

가시대궁 끝, 보라꽃 둘레 따라

자주색 꽃잎들이 날 세워 구축한 방어망이다

 

온갖 적이(敵夷)의 긴 시간, 머물다 핀 꽃

수만 번 무너지며 신음하다 몸을 열고 있다

저 길의 끝 연못에서 낮에만 얼굴 사뿐 열고

밤에는 문을 닫는다

 

저 많은 가시들,

늪이 피워낸 무언의 소리 중 하나일 것이다

 

시집<타오르는 불꽃> 2009년 도서출판 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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