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경이 / 이옥자
길바닥, 질경이가 지천이다 짓밟혀도 다시 살아 질기다는 질경이, 원줄기 없이 돼지 귀처럼 생긴 여러 잎이 땅바닥에 납작 누웠다
여름이면 방망이처럼 빼 올린 꽃대에 가을엔 잘게 여문 차전자씨가 가득하다 까만 씨앗은 오줌발이 세지고 눈도 맑게 한다 먹을거리가 귀했던 시절 어린잎은 한 끼의 끼니로도 넉넉했다
한의사였던 아버지 질경이가 여물 때면 베주머니를 몇 개 주셨다 방과 후 친구들과 메뚜기 뛰노는 들판에서 까맣게 여문 씨앗을 주르르 훑어오면 아버지는 주머니에 용돈을 채우셨다 해마다 가을이면 내 용돈이 지천이다
시집<타오르는 불꽃> 2009년 도서출판 천우
가시연꽃 / 이옥자
늪이란 곳에서도
가만히 귀 기울이면 식물도 작은 곤충도
오케스트라처럼 소리의 화음을 이룬다
생명소리
가득한 곳, 방패처럼 큰 잎들이 늪을 덮는다
튼튼한 방패 뚫고 나온 저 가시대궁, 날카로운 창이다
가시대궁 끝, 보라꽃 둘레 따라
자주색 꽃잎들이 날 세워 구축한 방어망이다
온갖 적이(敵夷)의 긴 시간, 머물다 핀 꽃
수만 번 무너지며 신음하다 몸을 열고 있다
저 길의 끝 연못에서 낮에만 얼굴 사뿐 열고
밤에는 문을 닫는다
저 많은 가시들,
늪이 피워낸 무언의 소리 중 하나일 것이다
시집<타오르는 불꽃> 2009년 도서출판 천우
'♣ 詩그리고詩 > 1,000詩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바람벽 / 이사랑 (0) | 2010.02.12 |
---|---|
천변 풍경 외 1편 / 염창권 (0) | 2010.02.12 |
영국사 은행나무 / 황진성 (0) | 2010.02.12 |
접촉사고 / 황진성 (0) | 2010.02.12 |
바람의 모습 외 1편 / 권도중 (0) | 2010.0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