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낙법의 기술 / 나혜경

시인 최주식 2010. 2. 22. 23:49

낙법의 기술 / 나혜경

 

산을 내려오다 빙판길에서 미끄러졌는데

크게 다친 데는 없다, 낙법을 배웠냔다

아, 나도 모르는 사이 몸에 익힌

낙법? 그거 별거 아니네

하긴 살얼음판 같은 세상,

미끄러지는 일에 이제 이골났다

미끄러질 때마다 가볍게 털고 일어났던 게

날개 없는 삶이 가르쳐 준 낙법의 기술이었다니

 

고양이 한 마리가 음식물통 위에서 두리번거리다

사람을 발견하고 미끄러지듯 땅으로 내려선다

소름끼치도록 사뿐한 반사본능의 저, 낙법

 

꽃잎 한 장 다치지 않고 툭, 동백꽃 떨어진다

 

아프진 않은데 여기저기 멍이라니

놀란 몸은 참았던 아픔을 다 기억하고 있었던 거라

온몸에 물파스를 화끈화끈 처바르며

저 빨개진 동백꽃의 궁둥이에도 파스를 발라주고 싶다

 

  시집<담쟁이덩굴의 독법> 2010. 고요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