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육화 / 온형근
싹이 트고 잎이 튼다 가지였나 싶었던 이내 굵어지는 가지에게 줄기는 강건하다 나무는 가끔 생채기를 낸다 연한 가지는 굵직한 줄기가 버거워 털어진다 매달려 있던 생을 제 힘으로 서 있게끔, 지상으로 거처를 이룬다
한적한 숲에서 풀과 벌레를 육화시키며 무게를 덜어 낸 줄기와 가지는 사람의 발길에 채이고 공중으로 날리는 서툰 약속과 가벼워 쥐어지지 않는 헛말의 홍수에 떠밀려 이 귀퉁이 저 귀퉁이 흐른다 나무의 육화는 연어를 닮았다
한나절 긁어모은 나무의 잔해를 마주한다 서로 다른 생을 간직한 채 마감된 나무들은 푸르고 넉넉한 하늘 닮아 싱싱하다 얼기설기 왼쪽과 오른쪽으로 층을 지어 쌓고 구멍처럼 파낸 가운데에 불을 지핀다 육화된 나무의 잔해는 숯불이 되고 고구마, 감자, 밤이 던져진다 숯에서 얼기설기 까만 외투를 두텁게 입은 고구마와 감자, 입을 째지게 벌린 밤들이 오롯하다
옷 벗기고 맛보는 첫맛이 기막히게 달다
시집<고라니 고속도로> 2007년 문학의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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