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꼬막 삶는 저녁 / 나혜경

시인 최주식 2010. 2. 23. 00:00

꼬막 삶는 저녁 / 나혜경

- 못다 한 말

 

나는 필사적으로 입을 열려고 하고

그는 필사적으로 입을 다물려고 한다

 

신경전을 벌이다

내 손톱 끝은 부러지고

그는 혀를 깨물었다

 

들어가지도 나오지도 못한 혀

가만 밀어 넣어주려 해도 꼼짝 않는다

닫힌 마음에 물린 세 치 혀끝에

사나운 슬픔이 살아 있다

마음 찡하다

 

파도처럼,

철썩이며 끓어대는 물에서야

맥없이 입은 벌어지고

 

오, 꼬막의 입 속

누구에게도 닿지 못한 바다의 말과

잘 익어 고요해진 슬픔,

꺼내어 씹어 본다

망설이기만 하다 혀를 깨물고야마는

내 입 속 못다 한 말처럼

눈물겹도록 짭조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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