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통 / 윤관영
배추 잎이 오그라들면서
끝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꿀통이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저를 파먹는 놈이다
이 꿀통에는 꼴통의 냄새가 난다
집요한 나르시스의 냄새가 난다
칼로 허리를 치면
제 살 파먹은 흔적이 나이테 같다
뿌리부터 썩는 꿀통은 자살 광신도 같다
건드리면 부서져 내린다
진딧물 먹은 놈이 실상 실한 거지만
그런 것은 버려진다
한 땅 한 하늘 한 바람인데
같은 비료 같은 농약에 한 주인일 텐데
이런 꿀통들이 왜 있을까
뿌리째 뽑아서 들이켜고 싶은 꼴통들
꿀은 스스로 간을 맞춘
소금이 필요 없는 존재
이 꿀통에는 시인의 냄새가 난다
저 죽는지 알면서도 끝내 못 놓는
그 하나, 썩어
간이 되는 그……
몸통으로 칼 받는 그……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2008.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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