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꿀통 / 윤관영

시인 최주식 2010. 3. 6. 22:36

꿀통 / 윤관영

 

배추 잎이 오그라들면서

끝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꿀통이라 한다

그러니까, 제가 저를 파먹는 놈이다

이 꿀통에는 꼴통의 냄새가 난다

집요한 나르시스의 냄새가 난다

칼로 허리를 치면

제 살 파먹은 흔적이 나이테 같다

뿌리부터 썩는 꿀통은 자살 광신도 같다

건드리면 부서져 내린다

진딧물 먹은 놈이 실상 실한 거지만

그런 것은 버려진다

한 땅 한 하늘 한 바람인데

같은 비료 같은 농약에 한 주인일 텐데

이런 꿀통들이 왜 있을까

뿌리째 뽑아서 들이켜고 싶은 꼴통들

꿀은 스스로 간을 맞춘

소금이 필요 없는 존재

이 꿀통에는 시인의 냄새가 난다

저 죽는지 알면서도 끝내 못 놓는

그 하나, 썩어

간이 되는 그……

몸통으로 칼 받는 그……

 

시집『어쩌다, 내가 예쁜』2008. 황금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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