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생각의 뒤편 외 1편 / 장재원

시인 최주식 2010. 3. 6. 22:37

생각의 뒤편 외 1편 / 장재원

 

왼손 가운뎃손가락 끝마디 안쪽에

밤송이 가시가 부러진 채 박혔다

뽑아 낼 수 없어서 친구 삼았다

자주 모르고 물건을 집을 때마다

따끔거려 불편했지만 그때마다

성가신 불청객이 쑤셔대는 생각을

볼 수 있어서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적과의 동침이 주효했던가

과연 며칠 지나니

그동안 가짜 주인 행세했던

한 올 미늘이 된 생각을

본래 주인인 뒤편 신령한 생명이

순수한 한 방울 핏빛 시간을 흘려보내

삼켜버렸다

마치 원생생물인 아메바가

식포를 만들어 침입한 적을 해치우듯

 

얇은 지문 아래 투명하게 내비치는

비목어比目魚의 외눈처럼

생각의 뒤편에서 솟아난 자각의 눈!

 

적을 끌어안고 장렬히 눈 감은 뒤

상여 나간 자리에

존재의 꽃인 새 살이

갓 태어난 아기 얼굴로 새근대고 있다

 

 

고속도로에서의 명상 / 장재원

 

  고속도로에서는 길가 나무를 거미가 먹이 동여매듯 친친 동여매는 칡넝쿨이 보인다.

  방음벽 발끝에서부터 머리꼭대기까지 군대로 몽땅 뒤덮어버리는 담쟁이도 보인다

  도롯가 옹벽 휀스를 납작하게 찌부려트려놓는 바윗덩이도 보인다.

  삽시간에 청정 하늘을 갈기갈기 찢어대는 독사의 혀 같은 먹구름도 보인다.

  차 앞유리창을 갈가마귀 떼처럼 쪼아대는 억수 빗줄기도 보인다.

 

  그것들 내게도 있었다.

  그러나 이 순간 그것들은 나를 어쩌지 못한다.

  내가 뭇 배들 미끄러져 가는 가까운, 먼 아스팔트 바다로부터 발바닥 밑으로 전해져오는 미세한 진동까지도 깨어 느끼며 키를 단단히 잡고 유유히 물결을 타고 있는 한.

 

  오히려 화살처럼 미끄러져가는 내게 모두 고삐 잡혀서 아찔한 한순간의 스릴마저 선사한다.

  살짝 밟은 브레이크 한 번에 올가미 던지던 칡넝쿨도, 마수를 뻗쳐오던 담쟁이도 허탕을 치누나.

  깜박거리는 방향지시등 불빛 하나에도 찍어 누르던 바윗덩어리가 가루 되어 날아간다.

  부아아앙~ 힘찬 가속 페달에 독사의 혀도 찢겨져 나가고, 양손을 한 번 냅다 휘저으니 앞유리창을 쪼아대던 갈가마귀 떼들도 그만 포말로 흩어지고 마는구나.

  비로소 온전히 내가 된 힘이로구나.

  내가 아닌 생각에 휘둘렸던 나를 도로 찾고 껄껄껄 큰 웃음소리구나.

 

  오연히 키를 잡은 채 먼, 가까운 아스팔트 바다를 응시하며 뱃전에 자리잡은 오늘의 선장에게 구태여 목적지는 없어도 좋다.

  다만 지금, 여기, 산과 바다와 하늘과 하나 되어 있으니.

 

  그러나 아쉽게도 고속도로는 다시 끝나가고 있다.

 

  『리토피아』 2010 봄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