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詩그리고詩/1,000詩필사

터널 관리인 / 백상웅

시인 최주식 2010. 3. 6. 22:40

터널 관리인 / 백상웅 

  

그들이 꿈틀대는 터널의 양 끝을 묶어버렸겠지.

나는 열차를 타고 터널 속을 속절없이 오고가는 사람.

 

나는 궁금했지. 터널 양 끝 위치한 집에서 살아가는,

관리인이라고 불리는 종족 말이야.

입구와 출구를 구별할 수 있긴 있는 거야?

뚫린 구멍 속에서 앞뒤 구멍을 찾는 것이 어려운 일이라니.

 

그들은 아마 굳건히 믿고 있는 것이겠지.

이쪽에서 들어간 열차가 저쪽에서 나오는 열차와 같은 열차라는 것을.

 

한 벽에 파인 구멍을 하루 종일 지켜보고 있을 그들.

나는 그들이 일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는데도

그들이 괜히 밉다는 말이야. 터널 속을 통과할 때마다

창밖에 앉아 달려가고 있는 나를 본다는 것은

창밖의 내가 아주 오래 전에 열차를 타고 터널 속으로 들어간 자일지도 모른다는 것.

왜 그들은 자꾸 나를 통과시키는 것이야?

 

양 끝이 단단히 묶여 소시지같이 퉁퉁 불은 이곳,

그들이야말로 독재자가 아닌가 싶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아닌데.

마음 내키는 대로 한 쪽을 풀고 한 세계를 내보내고

또 한 쪽을 풀어 어둠을 쭉쭉 빼내면서 철길,

저 끝을 풍선처럼 분다고나 할까.

사실 그들은 열심히 일했을 뿐이지. 내가 미워할 필요가 없는데,

 

말했듯이 나는 터널의 앞뒤를 수없이 뚫고 다닌 사람.

나는 차라리 굴속에서 뿔을 키우고 싶은 것이야.

 

 <젊은시> 2010년 문학나무